> 공연명 : 지킬앤하이드 투어 내한공연
> 공연날짜 : 2009.9.11
> 공연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캐스팅 : 브래드 리틀, 루시 몬더, 벨리다 월스톤, 완 잭슨, 베리 랭리쉬

지킬앤하이드 국내 라이센스 공연이 시작된 지 어언 5년이 되었습니다. 2004년 안그래도 잘나가던 조승우를 영화와 뮤지컬을 넘나드는 특A급 스타로 발돋움 시켰고 류정한, 김우형, 민영기, 서범석, 홍광호까지 노래 좀 한다 하는 선굵은 뮤지컬 배우들은 한번씩 거쳐갔던, 수많은 뮤지컬 팬들로 하여금 목에 핏대 세우며 현기증 나게 만들었던 '지금이순간'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지킬앤하이드... 그 내한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브로드웨이키드라고 자처하면서도 사실 고백하자면... 지킬앤하이드 공연은 이번에 첨 봤습니다. 대극장 뮤지컬 잘 안보는 데다가 가격적인 압박때문에 음악만 듣고 동영상만 보다 보니 그냥 본 거처럼 느껴지는 그런 공연이 되어버렸더랬죠.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 렌트 오리지널 공연과 함께 지킬앤하이드까지 걸출한 투어공연을 볼 수 있는 횡재를 얻어 세종문화회관엘 다녀왔습니다.

오리지널... 맞나요?


사실 이번 공연을 보기 전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바로 전 날 브래드 리틀의 립싱크 기사도 접한데다가 몇몇 누리꾼들의 좋지 않은 평도 보게 되어 혹여나 아시아 팬들을 무시한 수준낮은 투어공연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더랬죠. 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깐깐한 제가 기립박수 칠만한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 지킬 공연 처음 보는거라 다른 비교대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주연인 브래드리틀의 노래실력과 연기력은 물론 앙상블들의 빠지지 않는 실력과 무대 하며 그닥 나무랄 데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브래드 리틀은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으로 한국에도 왔었다는데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던 배우인지 미리 예습을 했더랬죠. 노래 잘 하더군요.



지킬/하이드는 브래드리틀 이전에도 초연멤버인 로버트쿠치올리를 비롯 많은 배우들이 거쳐갔습니다. 그 중에는 스키드로우의 멤버인 '세바스찬 바하'도 있었고 전격Z작전의 '데이빗 핫셀호프'도 있었죠. 다른 프로덕션의 경우 어땠는지 잘은 모르지만 국내 라이센스 공연과 비교해 보면 브래드리틀의 지킬은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조승우로 대표되는 국내 지킬의 경우 여리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지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브래드리틀의 지킬은 아주 단호하고 거친 지킬을 보여줍니다. 정신병원 이사회 장면의 경우 신사적이긴 하지만 지킬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사들을 조롱하고 질책하고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루시를 만나게 되는 술집 장면의 경우 어터슨에 이끌려 마지못해 클럽을 찾았던 국내 버전과 달리 오히려 지킬이 자기 총각파티 해달라며 어터슨을 끌고 가니 뭐 말 다했습니다.

간청하며 매달리던 조승우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브래드리틀의 지킬은 그가 이미 하이드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알 수 있게 하는데요, 이러한 지킬의 성격변화는 단지 연기 해석의 차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지킬/하이드가 그저 다중인격으로만 비쳐졌었다면 인간이 선과 악 두가지 면을 모두 가지고 있고 이 두가지 성격을 분리시킨다는 지킬의 실험 설정에 좀 더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일상의 모습과 더 비슷한 거 같기도 하네요~)

아직 지킬인거죠~


그리고 다른 캐스트들 모두 안정된 실력과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어터슨과 댄버스경, 그리고 조연들과 앙상블 모두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위에선 엠마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하는 의견이 많은데 글쎄 제가 보기엔 그다지 나빠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우려에 비해 무척이나 괜찮았던 브래드리틀의 지킬/하이드에 비해 루시는 아쉬운 캐릭터로 남습니다. 루시 캐릭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섹시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섹시함이라 함은 클럽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모'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지킬을 사로잡을 '관능미' 그리고 하이드에게 당하면서 관객들에게 동정표도 얻어내야 하는 약간의 '백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루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런데 이번 내한공연에서 루시는 그 어떤 모습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루시가 천박하고 섹시한 캐릭터라면 섹시함은 사라지고 천박함만이 남았다고나 할까요~ 루시가 지킬을 연모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지킬이 루시에게 혹하는 모습과 하이드가 루시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루시는 공중에서 그네를 타고 처음 등장하는데요 루시역을 맡은 배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요란하게 등장할만한 포스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new life' 등 노래는 무난하게 잘 하지만 워낙에 쟁쟁한 루시를 많이 봐온터라 그렇게 인상적이지가 않네요~ 차라리 우리 김선영씨나 소냐의 new life가 훨씬 더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개인적으로 루시 이미지로는 핫셀호프 지킬 동영상의 Coleen Sexton이 최고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섹시함과 백치미의 조화란... 이름부터가 벌써 다르지 않습니까?)

섹시함과 천진난만함과 귀여움을 다 갖춘 루시


기타 다른 프로덕션과 다른 자질구레한 점들

- 지킬의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정확히 노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반 아버지를 보내고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노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더군요.

- 루시 장면이 몇 장면 바뀌었습니다. 처음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노래하던 넋두리 송 'no one knows who I am'이 삭제 되었습니다. 의 순서가 스파이더에게 혼나고 나서로 바뀌었습니다.(090922 수정) 바로 그네타고 'bring on the man'을 부르며 등장하죠~ 그리고 핫셀호프 지킬의 동영상을 봐도 그렇고 브로드웨이 버전 OST를 들어봐도 그렇고 루시가 클럽에서 남자를 유혹하며 부르는 노래는 'good and evil'인데요, 이번엔 국내 라이센스 버전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bring on the man'을 들려줍니다.

어떤때는 bring on the man

어떤때는 good & evil


- 지킬의 실험실 무대가 바뀌었습니다. 소파가 놓여있는 지킬의 집무실에서 진행되던 많은 장면들이 새로 등장한 연구실 입구 세트(나선계단이 놓여있는 현관세트)가 자주 등장합니다. 'this is the moment'도 이 나선계단에서 시작하죠~ 실험실은 좀 더 규모가 커진 듯 합니다. 약병이 훨씬 많이 놓여 있는 거 같구요, 실험실 세트가 앞으로 밀려나올 때 백라이트는 멋진 빛의 갈라짐을 연출합니다.

저 높은 곳의 약병은 어찌 꺼내시려나


-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신하게 되는 약물 주사가 내복약으로 바뀌었습니다. 비커에 약물을 섞으면 실제로 색이 변하는 신기한 장면도 보여주는데요 지킬은 이 약을 비커채로 들이킵니다. 브래드는 주사맞기를 싫어하는 걸까요?

자 원샷~

- 루시가 하이드에게 상처를 입고 지킬의 연구실에 찾아가는 게 생각나시죠? 루시가 왜 상처를 입게 되었는지 장면이 나오는데 살짝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고 자세히 안보면 루시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 주교를 살해하는 장면에선 시체를 불태우는 장면이 그냥 때려죽이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불지르는 대신 그냥 시체를 밟고 서 있습니다.

불태워 죽여야 제 맛인데


- facade 장면도 신선한 장면이 많은데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하철1호선'을 연상시키는 기차장면입니다. 기차 좌석에 앉은 앙상블들이 바운스로 기차의 흔들림을 표현하며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기존작품보다 업그레이되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훌륭한 앙상블들~ (얼핏보면 레미제라블 같네)


- dangerous game의 설정도 살짝 바뀌었는데요, '루시를 유혹하는 하이드와 일방적으로 당하는 루시'의 구도에서 '하이드의 얼굴을 보려는 루시와 얼굴을 감추려는 하이드'의 컨셉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래 중에 'no no~ no no~' 하던 하이드의 코러스가 단지 음악적인 코러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는 설정으로 사용되어 좀더 드라마틱한 넘버가 되었네요.

- your work - nothing more 장면은 사막의 활용으로 4명의 배우를 동등하게 드러낸 다른 버전과 달리 엠마 부녀를 사막뒤로 숨겨 보조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이드로 분한 영상이 아버지 액자에 투사되는 게 독특하더군요.

- 마지막 지킬과 엠마의 결혼식 장면의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국내버전 핫셀호프 버전 모두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번엔 관객을 등지고 서 있더군요~


오리지널 공연이란?


이번 지킬앤하이드 공연 포스터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오리지널을 향한 13년간의 기다림'이라구요~ 그리고 각종 기사들에도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이다'라고 언급이 되었더랬죠. 그런데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오리지널이란 어떤 걸까요?

오리지널이라 함은 연극이나 뮤지컬 등 어떤 공연의 초연을 말합니다. 이건 사전상에도 나와 있죠. 그 공연의 최초 공연을 오리지널 공연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 뮤지컬 CD에 'Original Broadway Cast'라고 씌어 있으면 브로드웨이 초연멤버들이 녹음을 했다는 겁니다. 그 캐릭터를 처음 분석하고 연기하고 그 노래를 처음 해석하고 부른 배우들이 바로 오리지널 멤버들인 만큼 이 '최초'라는 단어는 공연장르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매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영화나 다른 장르에 비해 캐스팅별로 수많은 버전을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의 경우 이 오리지널 공연은 뮤지컬 팬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이번 지킬앤하이드는 오리지널 공연이었을까요?

지킬앤하이드는 1990년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과는 많이 다른 버전이었겠지만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앨리 극장(Alley Theatre)에서 호평을 받으며 막을 올렸죠. 이후 1995년에는 전미 순회공연이 시작되는데 이때 멤버가 바로 로버트 쿠치올리(지킬/하이드)와 린다 에더(루시)입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7년 브로드웨이에 이 멤버가 그대로 입성해 플리머스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 공연이 우리가 흔히 초연으로 알고 있는 공연이고 지킬앤하이드 CD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그 버전의 공연이랍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인거죠.

그러니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번 지킬앤하이드는 투어팀일 뿐 오리지널 팀이라고 할 만한 어떤 연결고리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판권을 사들여 우리 배우들로 공연하게 되는 라이센스 공연과 차별을 두어 '본토에서 온 팀이다' 라는 뜻으로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같은 기간 내한한 '렌트' 팀이 '아담파스칼', '안소니랩' 등 초연멤버들로 훌륭한 공연을 보여 준 것을 생각하면 좀 아쉬운 대목입니다. 제작사 측에서도 이를 의식했는지 어쨌는지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최초 내한공연'이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하더군요. 오리지널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았더라면 그냥 좋은 공연으로 기억에 남았을 텐데 괜한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오리지널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와 상당히 높아져 있는 관객들의 수준을 생각해 볼 때 제작사 측에서 굳이 '오리지널'이란 타이틀로 홍보를 해야만 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의 아쉬움과 홍보에 있어서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들을 모두 덮어줄만큼 공연자체는 너무나도 훌륭했던 지킬앤하이드 리뷰였습니다. fin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나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해당 제작사와 개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이미지 출처 : 트루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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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방미인 2009.09.23 12:59 신고

    트랙백 타고 들어왔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미리 알고 두번째 봤다면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추어 관객의 입장에서 브래드리틀의 지킬앤하이드는 분명히 조승우의 지킬앤하이드와 느낌이 달랐습니다. 무대장치나 노래순서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소화해냈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더군요. 지킬박사가 먼저 술마시러가자고 친구에게 얘기하는 장면이나 하이드의 목소리에서도 sympathy, tenderness 같은 단어들은 감미롭게 들리는 것이 브래드리틀은 절대선, 절대악은 없다는 나름의 해석을 무대에서 보여주려는 디테일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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