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제목 : 뮤지컬 어쌔신
- 공연날짜 : 2009. 10. 11 (일) 6시
- 공연장소 : 신촌 더 스테이지
- 음악/가사 : 스티븐 손드하임
- 대본 : 존 와이드만
- 연출 : 최성신
- 번역 : 박천휘
- 우리말 가사 : 이동선 박천휘
- 캐스트 : 존 윌크스 부스 - 강태을, 찰스 귀토 - 김대종, 레온 촐고즈 - 이 석, 쥬세페 장가라 - 이창용, 새뮤얼 비크 - 한지상, 존 힝클리 - 김대명, 리넷 스퀴키 프롬 - 임문희, 사라 제인 무어 - 최혁주, 발라디어/리하비오스왈드 - 이경수, 앙상블 - 최병광, 김지숙, 윤성원, 엄예은

손드하임에 대한 기억

스티븐 손드하임은 아직도 우리나라 뮤지컬 팬들에게는 낯선 이름일텐데요. 손드하임을 처음 접한 건 1996년이었습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노래패 '울림터' 멤버들과 PC통신 하이텔 뮤지컬 동호회 멤버들이 주축이 되었던 뮤지컬 프로젝트 팀 '변주'에서 뮤지컬 영상 감상회를 하면서 손드하임의 공연영상을 처음 소개했었는데요. 제 기억에 아마도 그 때가 우리나라에 손드하임을 처음 소개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LD와 VHS로 접했던 작품이 바로 '스위니토드'와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였죠.

뮤지컬 빅4의 선율에 익숙해 있던 제게 손드하임의 음악들은 낯섬 그 자체였습니다.. 언뜻 들어서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지는 멜로디들과 절대로 따라부를 수 없을 것 같은 변화무쌍한 박자들은 쉽게 정 붙이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멜로디는 귓가에 맴돌고 어디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작품 컨셉과 무대사용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더군요. 스위니토드의 무대 전환과 선데이~의 그림을 표현한 무대는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관객들의 관심 밖이었던 2005년도 '암살자들(어쌔신 초연)' 이후 스위니토드가 처음 우리나라 무대에 오른 게 2007년이니 손드하임이란 이름을 알게 된 후 그의 공연을 접하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네요. '암살자들'을 시작으로 '스위니토드' '컴퍼니', 그리고 아마추어 공연으로 몇 번 선보였던 '인투더우즈'까지 손드하임은 이제 막 우리 뮤지컬 팬들에게 선을 보인 셈입니다. 외국에서 손드하임이 가지고 있는 명성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뮤지컬계는 참 오랫동안 그를 외면했었네요. 손드하임 선생님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손드하임의 이름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일 겁니다. 1961년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가사작가로 출발한 손드하임은 이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가는데요, 쉽게 친해지기 힘든 그의 클래시컬한 음악뿐 아니라 손드하임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은 '작가'란 호칭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게 만듭니다.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손드하임

손드하임 작품의 특징이라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보는 것일텐데요. '동화 속 주인공들은 그 이후에도 행복했을까?' 란 질문을 던지는 'Into the Woods' 도 그랬고 '한가로워 보이는 풍경의 그림 속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란 질문에서 시작된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등이 그렇습니다. '어쌔신'도 역시나 호기심 넘치는 손드하임의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군요. 바로 '역대 미국대통령들의 암살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이란 질문에서 뮤지컬 '어쌔신'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아무런 의심이나 궁금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 걸까요? 밝고 아름답게 보이는 세상은 과연 아름다운걸까요?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나쁘다고 알고 있는 것들은 과연 그렇게 '좋고' '나쁜'걸까요? 손드하임의 작품들에는 대체적으로 이런 기본적인 질문이 깔려 있는데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호기심을 넘어서 손드하임의 작품은 이런 사회구조적 모순을 좀 더 깊이 파고듭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런던 뒷골목의 핏빛 복수극을 다룬 '스위니토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상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고 절규하는 창백한 이발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뮤지컬 '어쌔신'은 '암살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미국사회에 깊숙이 드리워져 있는 그늘을 들춰내고 있습니다. 링컨과 케네디의 암살이야 너무나 유명하고 조디포스터 광팬의 레이건 암살시도도 알고 있었지만 미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암살자들과 암살당한 대통령이 있었는지 공연을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그들은 왜 대통령을 죽여야만 했던 걸까요?

명분없는 암살자들을 위한 변명

작품 속 9명의 암살자들은 제각각의 이유를 말합니다. 폭군을 제거하려는 대의적인 명분으로, 사랑하는 배우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또는 개인적인 배신감에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만 공통적인 이유는 대통령을 죽임으로서 자신이 세상의 주목을 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작품의 메인 타이틀곡이랄 수 있는 'everybody's got the right'의 꿈만 간직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메세지는 무척이나 와 닿습니다. 하지만 그 수단이 대통령 암살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죠. 암살은 살인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Everybody's Got the Right at the Tony Awards 2004

좀 다른 얘기일 지 모르지만 오늘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한 100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30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식민지 독립투사의 저항과 독재정치의 종식... 그 두 암살에는 분명히 명분이 있어 보입니다만 '어쌔신'의 암살자들은 그 명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요?

노예해방을 한 링컨대통령이 사실은 북부의 경제권을 장악하려는 폭군이었다는 존 윌크스 부스는 그나마 대의적인 명분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나머지 암살자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어이없는 이유로 대통령을 죽이려 합니다. 어찌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까지 있어보이는 사람들의 대통령 암살을 꿈과 자아실현의 예로 소개하는 건 백번 양보해서 심리드라마라고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공감이 가진 않습니다.

뮤지컬 '어쌔신'은 어쩌면 명분없는 암살자들을 만들어내는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겠군요~

'어쌔신'의 프로덕션

손드하임의 원작도 그러하겠지만 이번 '어쌔신' 또한 '스위니토드'나 '인투더우즈'에서 즐겨 사용한 서사극적인 장치를 작품에 많이 도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소화된 상징적인 무대와 관객과 등장인물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해주는 해설자(발라디어)의 등장, 연주자의 공개 등이 그것이죠.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 그러했듯이 이런 서사극의 장치들은 관객들이 극 속에 몰입하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극을 보고 판단하도록 하는데요 역사 속 실제 사건들을 나열하며 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가는 '어쌔신'의 아주 걸맞는 컨셉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브레히트가 말한 것같은 그런 거창한 의도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스타일로서 굳어져가고 있는 느낌도 드네요.

손드하임은 음악을 참 잘 가지고 노는 작가입니다. 음악적으로 드라마를 구성하는 뮤지컬의 어법을 가장 잘 살려서 표현하는 작가라고 할 만큼 손드하임의 음악들은 마치 수학처럼 과학처럼 톱니바퀴처럼 잘 짜맞춰져 있습니다. 특히 '어쌔신'에서는 지극히 미국적인 역사와 소재를 사용하는 만큼 다양한 미국적 멜로디들을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전통민속음악에서부터 미국국가와 7,80년대 팝까지 각 암살의 시대배경에 따라서 다양한 색깔의 선율들을 드라마틱하게 잘 섞어 놓았습니다. 손드하임의 음악을 듣다보면 정말 이 사람은 천재구나 싶어질 정도로 그의 음악들은 주도면밀하고 화려합니다.

2005년도 초연공연을 보지는 못해서 비교는 힘들지만 배우들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휼륭합니다. 최재웅, 김대종, 임문희 등 바로 직전에 공연했던 '날보러와요' 팀이 대거 합류했는데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호흡도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은 아쉽게도 발라디어/리하비오스왈드 더블 캐스팅으로 이경수씨의 공연을 보았는데 이경수씨의 발라디어도 나쁘지 않았지만 최재웅의 무대도 기대가 되더군요.

최재웅

강태을



또 눈여겨 본 배우가 있다면 존 윌크스 부스 역을 맡았던 강태을씨입니다. 강태을 씨는 극 중 상대적으로 가장 멋진 비주얼과 스타일을 뽐내며 등장합니다. 아무래도 배우 타이틀을 가진 쟈니부스였던 만큼 강태을씨의 나름 화려한(?) 외모를 마케팅적으로 써먹은 게 아닌가 싶은데 직전에 공연했던 '돈주앙'의 이미지를 너무나 그대로 가져와서인지 작품에서 살짝 동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강태을씨의 꽃미남 마케팅도 꽤 효과가 있어 보입니다. 꽤 많은 소녀팬들이 그녀의 눈빛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말이죠. 뮤지컬이 붐을 일으키는 건 환영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뮤지컬들이 마치 꽃미남 아이돌 뮤지컬처럼 되어가는 행태는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지난번 '쓰릴미' 때 느꼈던 거지만 작품의 내용과 의미와는 상관없이 특정 배우에게만 스폿라이트가 비치는 상황은 그다지 바람직해보이지 않습니다. 남자배우들이 많은 작품인만큼 앵콜을 하게 되면 자칫 제2의 소녀팬뮤지컬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더군요.

손드하임의 작품은 그 형식이나 내용이나 음악적인 면에서나 기존의 뮤지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관객들에게 충분한 자극이 될만합니다. 하지만 뮤지컬 '어쌔신'은 그 명성에 비해 살짝 마음을 열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사회의 이면을 파헤치는 손드하임의 날카로운 시선이 살짝 선을 넘은 것 같아서 일단 그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배경 그리고 소외받고 상처받은 자들의 심리까지 들여다보려니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공부깨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한 번 두 번 곱씹을 수록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그 점이 바로 손드하임의 매력이 아닐까요? fin

p.s.
- 1996년 당시 함께 아마추어 뮤지컬 작업을 진행하며 스티븐 손드하임의 이름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형님들인 이동선, 박천휘 두 분의 이름을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니 반갑더군요. 더 활발한 활동 기대할께요~
- 무엇보다 3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의 프로그램 원츄합니다~ 뮤지컬 제작자 분들 프로그램이 오천원 넘어가면 오히려 안팔린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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