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서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었는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절망스럽기만 하다.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해 보려 한다.



① 총선


BBK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시작으로 4대강 논란과 천안함 의혹과 용산참사와 인천공항 매각 의혹과 사저 비리 의혹과 FTA 날치기와 국회 돈봉투 사건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부정선거 의혹과 불법 민간인 사찰과 측근비리 등등 일일이 셀 수도 없는 비리들이 터진 와중에,

MB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이 시기에


유례없는 KBS,MBC,YTN 3사 공동 파업에,

유쾌한 정치비판과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상 하나의 이정표를 만든 나꼼수 열풍에,

정치 변혁에 대한 열망이 드러났던 안철수 열풍에,

압도적이었던 소셜네트워크상의 정권심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렇게 되었다...


비주얼로는 그냥 파란색이었을 때가 더 나았다. 무섭다...


이름과 색깔만 살짝 바꾼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특별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바 없는 예전의 리더를 중심으로 결집해 원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고

야권연대다 뭐다 말은 많았지만 어수선하기만 했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지켰어야 하는 사람들까지 내치면서 당연히 얻어냈어야 하는 것들을 얻어내지 못했다.


나꼼수 하면서 칼 맞을까 두려워 CCTV 있는 곳으로만 다닌다는 김용민은 8년전 인터넷 방송의 막말파문으로 탈락했고

정치적으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았으면서 논문 표절시비까지 휘말렸던 태권도 스타 문대성은 당선됐다.


노무현의 꿈을 다시 이루고 싶었던 문성근은 탈락했고

독도망언과 제수 성폭행 논란의 하태경, 김형태는 당선됐다.


대학 반값등록금은 먼 꿈이 되었고

대기업들은 더욱 활개를 치게 되었다.


정봉주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고

박근혜는 돌아왔고

이명박은 숨어버렸다.


탄핵까지 바라진 않았어도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랐다.





② 나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내가 정치 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참고로, 난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군인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교회를 다니면서 보수 우파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았으면 받았지 결코 진보좌파적인 성향을 띨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운동권은 다 나쁜놈들이라고 가정교육을 받았고 선거때마다 무조건 여당(당시 민정당, 민자당)을 뽑아야 아버지 월급이 올라간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아침마다 조선일보가 집으로 배달되었고 20대 말까지도 하루종일 조선일보의 사설들을 소리내 읽으며 취업 준비를 했다.


대학 시절에도 운동권이라든가 최루탄이라든가 시위라든가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연극,뮤지컬에 빠져 살면서 내 삶을 성실히 살고 있다고 위안을 삼았다.

20대 중반 군대에서 맞이했던 15대 대선에서는 DJ가 뭐 하는 사람인지 후보가 누군지도 모른채 부재자 투표에서 사표를 날렸었다. (고백하자면 ㅇㅇㅈ를 뽑았었다 ㅜ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걸 멋으로 생각했고 자유로운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20대 투표율이 꽤나 낮았다고 하는데 역시나 그런 20대 초중반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부모님이 대주는 등록금으로 대학 다니면서 캠퍼스의 낭만을 더 느끼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현실참여를 강요하는 건 어쩌면 폭력일테다. 결국 사람은 겪어야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여당과 야당,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어떻게 다른지 조차 구분 못하던 내가, 노사모도 노빠도 아니었던 내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을 뽑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변호하던 인권 변호사, 밑바닥에서 출발했던 그가 한 나라의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희망'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손으로 뽑은 첫 당선자가 노무현이었다. 이후에도 정치에 별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이라크 파병 등 정책들로 '기껏 뽑아놨더니 저 따위야?' 하고 욕 하기 일쑤였고 쌍꺼풀 수술이다 막말이다 이슈가 나올때마다 그를 뽑았던 내가 괜히 민망해지고 부끄러워지곤 했었다.


그런데 어찌됐든 내 손으로 뽑은 내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을 자기들이 끌어내리겠단다...

탄핵이란 단어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인줄 알았는데 대통령을 자기들이 탄핵하겠단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따져보아도 '그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때부터 피아 식별이 되기 시작했다. 생전 안보던 백분토론이 재미있어지고, 투표율에 관심이 가고 했던 게 이 시기부터였다.


굳이 난 내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그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쪽에 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눈을 바로 뜨고 세상을 보니 비상식이 너무나 많고 몰지각이 너무나 많더라. 난 가능한한 상식의 편에 서고 싶다.


언젠가 진보가 정권을 장악하고 온 나라가 진보의 성향을 띠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또 편이 나뉠 것이고 또 서로 지지고 볶을테고 그렇게 변증법적인 역사는 계속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아닌 그저 상식의 편에 서고 싶을 뿐이다.




③ MB


나꼼수를 들으면서 MB정권을 욕하고 진보의 편을 드는 게 마치 포퓰리즘인 것처럼 희석하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데... 난 MB가 대통령이 되기 전 서울시장일 때부터 싫었다.

청계천 복원이라며 한 사람도 편하게 지나갈 수 조차 없게 인도를 좁게 만들어 놓은 전시성 졸속 공사때부터, 버스전용차선을 만든다며 내가 낸 세금을 온통 쏟아부어 도로를 다 막아놓아 교통체증이 심해지던 때부터, 히딩크 앞에 쓰레파 차림의 아들을 데리고 나갔을 때부터 MB가 싫었다.


이후 이 사람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눈 앞에 뻔히 보이는 비상식과 비리들을 보면서도 성인군자를 뽑는 거 아니지 않냐며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어이없는 발언과 행동을 일삼고 명백한 범죄 전력을 가지고 있고 TV토론에서는 횡설수설하는 이 사람을 '경제는 잘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다.


말도 안되는 대운하 사업... 엄청난 정당성을 부여하며 밀어붙였던 사업인데 국민 뜻에 따르겠다며 취소한다고 하더니 시간차도 없이 그 즉시 4대강 사업을 들고 나왔다. 애초에 대운하든 4대강이든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그저 돈이 될 수 있는 사업꺼리가 필요했던 거다.


이후 경제는 더 나빠졌고, 자연은 황폐화 되었고,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오는 등 민주화는 자유당 시절로 후퇴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뽑을 사람이 마땅치 않으니 경제나 살리라는 뜻으로 MB를 선택했던 사람들의 생각은 '실수로 사람 하나 잘 못 뽑았다고 쳐. 그렇다고 뭐 더 얼마나 나빠지겠어?' 였는데,

그는 당선 후 5년 내내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게 진짜 포퓰리즘일까?




④ 착각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변화를 갈망하고 심판을 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번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는 어쩌면 현실과 단절된 그저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 중 하나의 게시판에 불과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결국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던 거다. MB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서로 높이고  떠들어 대면서 희망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 우리들끼리 나불대며 '난 격랑의 역사 속에서 내 할일을 다하고 있네' 하며 자기위안을 삼으며 인터넷 뒤에 숨어버렸던 거다. 누군가는 광장으로 나가서 내 대신 싸워주겠지... 하는 착각들을 우리 모두가 하고 있었던 거다.


소셜은 민심이 아니었고 지방은 아직도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아무리 나꼼수 청취자가 몇 백만이다 팟캐스트 세계 1위다 라고 해도 결국 투표장에 나가고 광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던 거다. 이제 정말 광장으로 나가야 할 때인 거다.


이번 총선에서 '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표현이다. 진 게 아니다. 싸울 의지조차 없었던 거니까.

2가지 용어가 생각난다.


스톡홀름 증후군 ;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


노예근성 ; 조선실록에, 종들을 개패듯 하던 주인이 어느날 개과천선하여 노비신분을 풀어주겠다고하자 나가서 입에 풀칠을 못할까봐 종들이 더 때려달라고 했답니다. (via twitter @jamesbirdny)


진짜 착각은 이 모든 게 대통령 한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문제는... 국민들이었고, 우리들이었다.




⑤ 희망


그나마 희망이라면 노회찬과 심상정이 돌아왔고, 이제 차기 대권주자로 본격적으로 문재인을 거론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 새누리당이 1당이 된 마당에 대선도 어찌될 지 모르는 상황이고 대선에서 이긴다고 해도 국회에서 얼마나 시비를 걸 지 불보듯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희망을 이야기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의지보단 시대적 요구에 의해 그 자리에 서게 되었고 다른 이의 후광을 업고 있다는 점, 그리고 특별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똑같은 이유로 문재인을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어준이 이야기 한 것 처럼 박근혜와 문재인의 '사사롭지 않음'은 전혀 다르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과 정치적 동반자의 꿈을 이어가려는 건... 전혀 다르다.


그리고 우린 권력의지는 강하지만 됨됨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이 나라를 얼마나 말아먹을 수 있는지 겪지 않았는가. 그저 권력의지는 약해도 됨됨이가 제대로 된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절망적일 수록 유머를 잃지 말자.




p.s. 민간인 사찰하시는 분들 수고하세요.



posted by 주군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나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해당 제작사와 개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페이스북 사용자는 여기에 댓글을 남겨주시고 일반 사용자는 아래쪽 Comment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Trackback 0 | Comments 3

주군's Blog is powered by Daum &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