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3 출시를 맞이하여 옛날 동아리 게시판을 뒤져서 찾아낸 11년전 포스팅




  
 주재규   2001-03-10 06:16:52   
디아블로 이야기..(쫌 기네)  
오락이 게임이라는 쬐금 더 있어보이는 용어로 자리바꿈하면서 어느새 젊은이 문화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지독한 범생이(대한민국에서 모범생의 의미란..) 기질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때까지 오락실은 불량학생이나 가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내게 대학와서 겪었던 오락실 발붙이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종의 culture shock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잠깐씩 관심을 가졌던 게임들이라고 하면..

- 486시절의 DOOM 2 (치트키 다 걸어놓고 아무걱정없이 오로지 살육에만 전념했었다.)
- 군대있을때 뱅기오락이랑 철권3 (일과시간만 끝나면 난 PX 달려가 한달월급을 모두 탕진하곤 했는데 매뉴얼 없이 버튼조작 연구하며 대대 최강 콤보펀치를 상대하는 건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내 주 캐릭터는 Xiaoyu였으니.. -_-)
- 펌프 잠깐 (티비서 매니아들 하는거 보고 감동받아 나의 춤실력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리라 큰 포부에 도전했지만.. 클론 '펑키투나잇' 마스터하구나니 흥미가 시들~)
- 스타크래프트 잠깐 (배틀넷은 왠지 딴세상같아 싱글플레이만 좀 하구 애들이랑 IPX만 쪼금 하다가 또 흥미가 시들~)

뭐 퀘이크도 잠깐 해보구 맛보기로 해본건 꽤 돼지만 그 흔한 포트리스도 안해본 보다시피 뭐 내세울만한 껨경력은 없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그랬는데..
늦게 배운 게임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마의 4학년 개강의 직전에서 물불 못가리게 푹 빠져든 게임이 있었으니.. 그 이름 디아블로(투)!!
동생의 유혹에 빠져 딱 한번 손댄것이 내 인생에 이리도 많은 깨달음을 가져 올 줄이야.. ^^;

몰르는 사람을 위해 이 껨을 잠시 설명하면..
원래 목적은 악의세력의 지배를 받는 나라를 구원하는 것인데 쉽게 말해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며 스토리에 따라 괴물 디립따 죽이는 거다. 대부분 게임이 그렇듯 자잘한 괴물 나오다가 마지막엔 왕이 나오는데 왕 죽이면 다음 act로 넘어가고 act 다 깨고 결국 마지막에 왕중에 대빵인 악마 '댜블로'를 죽이면 게임이 끝난다. 또 한번 죽여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normal, nightmare, hell 등 난이도를 높여가며 또 깨고 또 깨고 하는거다. 얼핏 시시할지 몰르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템 모으고 캐릭터의 레벨을 높여가는 것이 게임의 또다른 재미이며 중독의 요인이다. (사람을 컴 앞에 붙잡아 놓는 상업적 전략이 게임의 곳곳에 느껴지는데.. 껨 만드는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 했다.)

뭐에 빠졌다 하면 항상 앞뒤못가리고 푹 빠져 버리는 내 성격에 이번엔 또 '오락'에 중독되어 버리고 만거다. 한 며칠을 어디서건 시간만 나면 피씨방 찾는 모습에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지만, 평가절하할 문화는 없지 않은가 하는 거창한 합리화에 걍 즐겨뻐리자 해서 계속 했다. ^^;
게다가 솔직이 개강을 앞두고 겁이 나서 이왕 이리된거 할때 왕창하고 빨리 떼버리자 하는 마음에 거짓말 안하고 생각날때마다 껨방에 갔다. (푹 빠졌다가 금방 시들해지는 것도 나의 성향인것을 알기에..)
집에서두 가구 학교서두 가구 점심때두 가구 저녁때두 가구 자다말구 새벽에두 가구 그랬다.
사람만나는 날 아니면 면도도 안하게 되고 날이 갈수록 눈밑이 시커매지는 것이 중증이다 싶었다.

나는 게임하면 주로 여자캐릭터만 키우기때문에 소서리스 하루, 바바리안 하루로 기본기를 익힌 후 주욱 아마존을 키웠는데 캐릭터 키운다는 것이 이게 상당한 매력이다. 첨엔 별 시덥잖은 놈들한테두 쫓겨다니던 것이 고생고생해서 레벨 올려 놓으면 아 얘가 훨씬 잘 싸우는 거다. 레벨 업에 따라 불화살도 날리고 얼음화살도 날리는 데 그게 그렇게 즐겁고 대견할 수가 없는거다. (*아마존의 무기는 활,창. 주무기에 따라 활아마, 창아마로 불림)
게다가 아이템도 주워다 입혀주면 얘가 또 그렇게 달라진다. 갑옷에 따라 패션이 바뀌기도 하고 쥐어주는 무기, 장신구에 따라서 더 능력이 올라가구 그런다.
그러니 내 분신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는건 물론이거니와 마치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 이렇구나 모성애를 대리체험 한다 싶을 정도로 '한낱 오락'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죽기라도 하면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흐~

댜블로 안에는 현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게임안에 나타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모니터 밖 세상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캐릭터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뭐가 다른가. 설령 나는 굶더라도 내 캐릭터는 옷을 입혀야 되고 스킬 올려줘야 되고 레벨 올려줘야 된다. 어디가서 안 꿇리도록~
돈을 모아야 하고 아이템을 모아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나의 가치를 높여줄 옷과 목걸이를 구하기 위해서 죽어라 뛰어다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주위의 장애물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정해진 스킬트리에 따라서 길러지며 허접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고레벨들이 걸어왔던 스킬플랜을 연구하고 그대로 좇아야만 한다.
레벨이 어느정도 높아야 다른 접속자들도 나를 인정해 준다. 사회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 레벨을 높여야 하는 입신양명의 가치관이 댜블로 안에는 존재한다. 레벨을 높이는 것이 내가 강해지고 살아남는 길이며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길이다.
레벨이 낮으면 남들이 파티도 안해준다. (*멀티플레이시 동맹(ally)을 댜블로에선 party라고 하는데 파티멤버의 레벨이 높을수록 경험치가 빨리 오른다.) 나는 레벨 높은 애들한테 파티해달라구 별의별 아양 다 떨구 난리치다가 나보다 낮은애가 해달라믄 절대 안해준다. (내가 주로 쓰는 방법 : 한명 찍어서 머리위에 'party plz~' 달구 걔 주위에 빙빙돈다. 근데 그런경우 잘 안해줄뿐더러 내가 지금 머하구 있나 싶어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비굴한 모습도 댜블로 안에선 그대로 다 드러나더라.
파티멤버도 잘 만나야 한다. 친구를 잘 만나야 좋은 아이템을 얻는다. 활아마인 나는 내가 주운 활은 항상 별볼일이 없고 전부 파티멤버가 준 활들만 계속 사용해 왔다. 뭐 이런식의 대화와 함께..
'U need a bow? how's this?' 'wow~ what do U want 4 this?' 'just free~ take it~' 'ou~ thanx~ ^^'
주위의 호의를 많이 받았으면서도 정작 내가 아이템 줄라치면 항상 '머줄래여?' 물어보는 것도 숨어있던 나의 간사한 면인가 보다. 그래도 좋은세상 만드는 것이 나의 신조인지라 액트4에 있다가도 가끔 액트1 가서 웨이포인트 찍어주고 그런다. ^^

아무튼 그래서 밤낮 안가리구 아마존을 키웠는데..
처음 댜블로 깰때였다. 댜블로는 워낙에 두려운 존재였기에 몇번 찝적대다가 담에 멋지게 깨주지 하며 밤도 깊어져 뿌듯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다. '하하 댜블로만 남았다..'
근데 동생의 한마디.
'그걸 왜 남겨둬? 죽이지그랬냐. 걔만 죽이면 나이트가잖아.'
잠이 안오는거다. 댜블로댜블로...
결국 새벽4신가 다시 가서 어떤 애랑 파티해서 댜블로를 깼다.
또 뿌듯해서 담날 자랑했더니 또 동생의 대화.
'유니크아이템 주웠어? 모 나왔냐?'
왕을 깰때마다 조은 아이템이 나오구 댜블로 깰때는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걔가 다 가져갔구만 뭐. 아마존은 아이템 못챙겨서 안좋다니깐~'
부들부들~ 일이 손에 안잡힌다.
그리고 그렇게 나이트메어를 돌아다니다가 게임이 쫌 시들해질때였다.
이쯤이면 할만큼 했지 뭐.. 생각하는데 겜방아저씨가 내 모니터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툭 던지는 말.
'아마존은 헬 가기전까진 덱스만 키워야돼요.. 스트렝스도 키우면 안돼요'
(*덱스:dexterity의 약어. 원거리무기 사용 캐릭터에게 가장 요구되는 수치)
또 부들부들~ 마우스를 죽어라 뚜들겼다.

암튼 그런식으로 정확히 한달정도를 댜블로에 빠져 살았다. 피씨방의 자욱한 담배연기와 사투를 벌였고 인터넷에서 정보 찾아 헤메고 동생이랑 매뉴얼 분석하며 스킬플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등 하루 한레벨 올리기 작전을 착착 진행시켰다. 뭐 진짜 고수들 하고야 비교도 안되겠지만 나름대로 키워놓은 아마존이 꽤 자랑스러웠다.
비록 초보캐릭터라 스킬낭비를 많이 해 레벨에 비해 좀 약하고 아이템도 떨어지는 축에 속하긴 하지만 레벨 47에 헬 액트2에 가 있다.
데미지 104 껌은색 고딕활에 패스터 부츠, 장갑도 멋지고.
얼마전엔 임뷰해서 얻은 검은색 갑옷과 해골헬멧을 입혔더니 패션이 멋들어지는 것이 예전의 다소 여성적인 모습에서 탈피해 터프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나중엔 다른캐릭터도 키워보겠지만 난 이 아마존으로 가는데까지 가보리라 생각했다.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바람처럼..(likeWind)'
개강하는 바람에 한레벨 꾸준히 올리기 작전을 하루에서 일주일로 늦추긴 했지만 어차피 영원히 함께할 나의 분신 쉬엄쉬엄하면 어떠리...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 아마존을 이젠 다시 볼수 없게 돼 버렸다.
지난 화요일.. 무려 두레벨이나 높였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해킹을 당해 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패스워드 아무리 다시 쳐도 로그인이 안된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고 앞이 캄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느낌이 이랬던가.. 왜 세상은 일어날것 같지 않은 일들만 일어나는지.. 왜 하늘은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황당했다.

주위의 수십개 표적에 동시에 시위를 당기던 스트레이프 계열의 내 아마존은 정말 섬세함과 날렵함 그 자체였고 가끔 좁은 골목에서는 길막고 속을 쌕였지만 발키리도 없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 없는 어느새 그런 친구가 되어버렸었다. 나의 어떤 친구는 아마존이 글래머라서 내가 선택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우정앞에 어찌 그런 몰상식한 발언을 한단 말인가.. 아무튼!
그런데.. 그 모습들을 다신 볼 수 없다니.. 나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Dame의 작위를 넘어 막 Lady의 호칭을 부여받았었는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내 댜블로인생이 이렇게 끝날 줄이야.. 정확히 한달의 시간이었다.

지금쯤 어떤 나쁜놈에게 강제로 무장해제 당하고 옷이 벗기워지고 있을(뉘앙스가 이상하지만 -_-;) 생각을 하면 잠이 안온다.
내 소중한 활 세자루와 막판에 맛들인 보석수집에 모은 퍼펙트 보석들..

며칠이 지났다. 이제서야 차분하게 글을 올릴 수 있게 된건가...
드디어 그녀를 잊은걸까.. 그녀 없이도 세상은 너무도 잘 돌아간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 좋은 활을 구해 왔다고 자랑할 것만 같은데..
당분간은.. 게임을 안하려고 한다. 피씨방 근처에도 안가려고 한다. 모든 것들이 그녀를 생각나게 한다. (사실 돈이 다 떨어졌다~ ^^)
이젠 나도 나의 길을 가야겠지..
인생의 많은 진리들을 내게 가르쳐주고 마지막으로 공수래공수거의 교훈마저 남겨주고 그녀는 떠나버렸다.
디아블로여 안녕.. 나의 아마존이여.. 안녕...



(그러나! 전용선 깔구 확장판 나오면 집에서 다시 한다. 다 죽었어~)

147.46.202.143 카우보이비밥~~v 03/10[11:04]
이거 형 얘기 맞나...맞다면...쯧쯧...ㅡㅡ;
211.199.185.115 성비니 03/10[11:28]
흠... 나도 해킹당할때가 되었는데...
210.219.164.97 Qttypie 03/10[14:47]
지금까지 형이 쓰셨던 어떤 글보다도 가슴에 와 닿네염... 얼마나 가슴이 아플꼬... 근데 형 내년에 졸업하실꺼죠?
210.221.85.91  03/10[22:39]
푸흇,,, 댜블로 한번두 안해봐써... 잼껬다... 바뜨, 나의 '알찬' 생활을 위하야 손대지는 말아야지...(난 제때에 졸업해야 하거덩~~ ^^*) 근데 재굡빠 보구 싶다요오오오오~~~
211.239.34.2 양밍!~ 03/10[23:15]
난 디아블로 관전해서 아는데 정말 재밌고 최고의 게임이다. 엔딩도 죽인다. 적이 죽을때 죽일맛도 난다 멋있게 죽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극찬한 두번째 게임이다. 첫번째는 철권...
211.108.94.171 형근 03/10[23:48]
너무 길어서 읽지를 못했어...훗
210.221.85.91  03/10[23:51]
중요한 건 내가 재굡빠 보구 싶다는 거얌~~ ((다른건 안 중요해 형근 오빠... ^^*))
211.60.20.194 민화 03/11[12:06]
서영아 더 중요한건...재규형은 널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지..ㅡㅡ;;
211.204.84.128 윤진 03/11[15:36]
맙소사-밤새서 쓰셨구려~
211.106.10.91 차차 03/13[00:56]
오빠..다 안 읽었어요..난 겜 몰라..^^;; 근데 참..길...다...
211.47.111.71 최환혁 (whanhyuk@hanmail.net) 03/13[03:18]
형.. 이런거.. 다신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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