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렌디피티 - 낭만주의의 신봉자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보면 주인공 '나'는 연인 클로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우연한 상황을 확률로 설명하며 낭만적 운명론을 펼칩니다.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 한가지 일이 일어난 것을 우주적으로 해석하며 자신들의 만남이 그 어떤 만남들보다 특별하고 유니크 하다고 여기려고 하죠. 이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것... 우린 그런 걸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린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운명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던가 그녀는 나의 운명이라던가 하고 말이죠.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영화는 그렇게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렌디피티'입니다.

serendipity ; 운 좋은 뜻밖의 사건, 발견


세렌디피티
감독 피터 첼섬 (2001 / 미국)
출연 존 쿠색, 케이트 베킨세일, 몰리 섀넌, 제레미 피븐
상세보기


지난 포스팅에서는 50여년간 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다루었더랬습니다. 영화는 개봉을 안했으니 못보신 분들이 많을텐데 왠지 그 영화나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면 바로 이 영화 '세렌디피티'를 보신 건 아닌가요?

크리스마스 즈음 백화점 장갑매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나단(존 쿠삭)과 새라(케이트 베킨세일)는 왠지 모를 이끌림에 커피도 마시고 스케이트도 타고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둘은 각자 애인도 있죠. 아무튼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세상 모든 일은 운명에 달려있다고 믿는 새라는 제안을 하나 합니다. 5달러 지폐와 길거리에서 파는 헌 책 한 권에 서로의 연락처와 이름을 적은 후 나중에 그걸 다시 손에 넣게 되어 연락처를 알게 되면 그 때 다시 만나자고요. 새라와 달리 현실주의자인 조나단은 마지못해 그 제안에 따르게 되고 둘은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이때, 새라의 연락처를 적은 책이 바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미국에서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쏟아지는 연애소설의 대표작품이라는데 이 영화에선 두 주인공의 운명적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이 책을 구하려고 서점의 외국서적코너를 뒤졌지만 없었다~



시간은 흘러 몇 년이 지납니다. 조나단은 결혼을 며칠 앞두고 있고 새라도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지만 둘 다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조나단은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새라도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게 되죠. 그런 중에 둘은 각자 이상한 징조(?)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새라'란 이름을 계속 접한다거나 둘이 얘기했던 오래된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결국 조나단과 새라는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서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서로 스쳐지나가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결국 다시 만나게 됩니다. 마치 운명처럼요... 그리고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합니다. happily ever after~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죠?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신의 계시인 듯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난 지난 사랑의 소중한 추억들... 우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저 단순한 우연을 확대해석 하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어떤 절대자가 운명의 책에 씌어진대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보통 운명을 얘기할 때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운명을 피해 달아난 오이디푸스가 결국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인간은 자기 앞에 놓인 거대한 운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과연 그런건가요? 미미한 우주의 티끌같은 우리들은 운명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까요?

자, 이제 운명이니 영원이니 하는 단어들을 빼고 영화를 한 번 보도록 하죠. 조나단과 새라는 각자 운명의 이끌림 이전에 현재의 사랑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조나단은 결혼을 앞두고 사랑이 식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전히 여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해야하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새라는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아 행복해 하지만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점점 거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현실에서 열정이 식어갈 때 자연스럽게 몇년 전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립니다. 뭔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던, 일상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을진 몰라도 온 우주가 그 시간 둘의 만남을 위해 존재해 왔던 것 같은 그런 느낌... 다시 말하면 잠깐이나마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 같은 그 때를 말입니다.

사람들은 평범하기를 싫어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의 삶은 고유하고 특별하다고 여기고 싶어하죠. 그런 점에서 운명이나 우연은 그렇게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모티브에서 출발한 이 영화 '세렌디피티'는 현실보다는 운명과 우연이라는 낭만적인 가치에 더 비중을 두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인연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들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만나고 싶어서 못견디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어쩌면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판타지는 아닐까요?

시크릿의 이론(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주가 움직이고 우리가 집중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으로 이끌려 온다는 내용)은 운명이 아닌 선택이라는 가설에 근거를 부여해 줍니다. 시크릿이란 책이 한낱 자기개발서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여기 나온 이론은 과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인용하곤 합니다만) 이에 따르면 조나단과 새라는 결국 운명이 아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 그 인연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오게 된다고도 볼 수 있는 거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란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죠.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포스팅들에서 열정에 대해 얘기했던 거 기억나시나요? 열정은 현재에만 집중하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라서 우리가 열정에 사로잡힐 때 시간은 그 흐름을 멈춘다고요. 조나단과 새라에게 그 짧은 만남은 강렬한 열정이었고 몇 년의 시간쯤은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시간을 초월한 운명이 아니라 열정에 사로잡힌 두 사람의 선택이었던 거죠.

사랑이 영원할 것인지 아닌지도 운명이 아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함으로써 나 자신이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영원하길 바라는 낭만적인 사랑과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가는 현실적인 사랑... 여러분은 어느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영화 '세렌디피티'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구독하시려면 클릭하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