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골목골목 뮤지컬'이란 타이틀로 무대에 처음 올려졌던 뮤지컬 '빨래'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동안 안 본 공연들이 너무도 많군요~ 좀 더 챙겨봐야겠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요즘 뮤지컬 바닥에서 좀 뜨는 홍지킬 홍광호와 오랜만에 티비에도 얼굴을 비치며 가수로 컴백한 임창정이 솔롱고를 맡았는데 다행히 두 버전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임창정 버전을 보여준 성우 박영재 형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식으로 홍보를... ㅎ)


뮤지컬 빨래에 대해서는 이미 초연때부터 얘기를 들어왔었는데요. 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는 게 참 미안해질 정도로 괜찮은 공연이더군요. '지하철 1호선'의 분위기가 나면서도 사회비판쪽으로 무겁게 흘러가지도 않고 하층민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지나치게 우울하지도 않고 적당한 감동과 적당한 볼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라이브연주와 함께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들은 제대로 된 창작뮤지컬 하나가 나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이나 소극장 로맨틱 코메디 뮤지컬들이 붐을 이루고 있는 요즘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뮤지컬 '빨래'의 롱런은 참 기특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원래 한예종 연극원 졸업공연이었다고 하니 학생들의 순수함까지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것 또한 무척이나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하던 '빨래'가 이번엔 연강홀이란 중극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덩치를 좀 키웠더군요. 그리고 요즘 뮤지컬계에 유행인 스타마케팅의 영향때문인지 모르지만 연예인(!) 임창정씨까지 캐스팅이 되었네요. 물론 그야말로 얼굴마담 역할로 뮤지컬 무대에 이름 올리는 시덥잖은 경우와는 아주 다릅니다. 임창정은 연예인 이전에 워낙 노래잘하는 가수였고 영화배우였으며 그 이전엔 '마의태자','에비타'같은 뮤지컬 무대에서 출발했던 배우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격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솔롱고 역도 평소 그가 보여주었던 소시민적 캐릭터와 아주 잘 맞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작사의 재정적 이유로 노개런티로 출연하기로 했다는 훈훈한 소식도 들려오고 여러가지로 임창정의 '빨래' 출연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최근 컴백후 TV예능프로들에서 보여줬던 가볍고 나대는 이미지가 겹쳐져 공연보는데 집중이 잘 안되는게 흠이라면 흠일까요?



오히려 뮤지컬만 하는 전문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경우가 더 스타마케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홍광호의 전 작품은 바로 '지킬앤하이드'였습니다. 노래를 정말 얄밉게도 잘하는 홍광호는 홍지킬을 통해 신인에서 벗어나 이제 뮤지컬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대명사 '빨래'에 출연했다는 사실 자체가 임창정의 뮤지컬 출연만큼이나 더 흥미롭게 와 닿는 건 왜일까요? 나이에 비해 참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는 홍광호를 보려고 '빨래'를 선택한 이유도 없지 않아 있지만 막상 공연을 보고나니 그 원숙한 바이브레이션과 시원시원한 가창력에서 이주노동자 솔롱고보다는 지킬앤하이드의 '지킬'이나 오페라의유령 '라울'이 살짝살짝 보이는 걸 어찌할 수가 없네요.



두 배우 모두 각자의 개성대로 솔롱고 역을 참 잘 소화했습니다. 홍롱고가 발음이나 움직임 등 디테일한 부분을 좀 더 잘 표현했다면 임롱고는 소박하고 소탈한 쪽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홍롱고가 뮤지컬 배우답게 대사와 노래의 간극을 매끄럽게 잘 이었다면, 임롱고는 살짝 기교가 보이기도 했지만 감정을 더 담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오랜만에 참 재미있고 예쁜 뮤지컬을 봤는데, 그 소박하고 소탈함을 보여주기에 홍광호와 임창정이란 스타마케팅은 살짝 아주 아주 살짝 생뚱맞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어느 배역 하나 두드러지는 것보단 무대 위 배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더 중요한 이런 장르의 작품에서 홍광호와 임창정은 마치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삼겹살 구워 쌈싸먹는 밥상에 놓여진 스테이크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훌륭하고 그냥 쌈장 발라서 풋고추랑 상추에 싸먹어도 상관없겠지만 왠지 따로 와인과 즐겨주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뭐 그래도 삼겹살 분위기에 말도 안되게 얼굴 들이미는 멸치 같은 애들하고는 다르니까요~

포스팅 방향을 스타마케팅으로 잡다보니 너무 두 주연배우 이야기만 했는데, 다른 배우들과 라이브 연주도 훌륭했습니다. 특히 할머니 역을 하신 이정은씨에 대한 찬사를 빼 놓을 수가 없는데요. 일찍이 지하철1호선의 곰보할매로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정은씨의 그 놀랍도록 리얼한 할머니 연기는 그것만으로도 기립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더군요. 저도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평소에 배역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답시고 떠들어대곤 했지만 이정은씨의 연기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군요.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참 따뜻하고 예쁘고 재미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뮤지컬 '빨래'가 '골목골목 뮤지컬'이란 순수함으로 대학로 소극장 무대를 오래도록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리뷰를 마칠까 합니다.


(그밖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 무대장치에서 찾아볼 것들 (지킬박사약국, 카바레 전속가수 임창정 등)
 - 서점 설정의 의미는? (추민주 연출의 경험에서 나온 설정이라는데 왠지 서점씬만 나오면 어색하더라는...)
 - 극 중 팬사인회는 꼭 해야했나? (이벤트로 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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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mile 2009.06.10 14:35 신고

    저는 이번 캐스팅말고 전의 캐스팅으로 봤어요.
    보고싶긴 했으나 이번 캐스팅은 패스였답니다 :)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아, 저는 할머니, 이봉련님으로 봤는데 빨래는 정말 할머니에 대한 찬사가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6.10 14:58 신고

      다들 잘하는데도 빨래에 스타캐스팅은 뭔가 아쉽다는... 할머니 역의 이정은씨가 워낙에 강렬해서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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