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터널 선샤인 -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포스팅 할까 말까 무척 망설였습니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영화들이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끝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사랑이 시간이 아닌 기억을 넘어선다는 다소 다른 설정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현실에서는 절대 경험해볼 수 없는 설정의 허구성때문에 고민을 하긴 했지만 고민끝에 연작 포스팅의 마지막 작품으로 정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에 있습니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남는다... 고 말하는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제목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알렉산더 포프의 격언의 인용이다


이터널 선샤인
감독 미셸 공드리 (2004 / 미국)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일라이저 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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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충동적으로 회사 땡땡이치고 몬타우크 해변으로 떠나는 조엘(짐 캐리)은 우연히 푸른머리의 발랄한 아가씨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게 되고 금새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며칠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진 연인들이었습니다. 둘의 관계가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 사에 의뢰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던 것인데요...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에 충격을 받은 조엘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워가면서 둘의 지난 사랑의 과정을 되짚어가면서 영화는 진행됩니다.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작과 끔찍했던 사랑의 종말, 그 모든 기억들이 조엘의 눈앞에서 하나둘씩 사라져가자 조엘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 기억의 삭제과정에서 도망치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기술자들의 밤샘작업(?) 끝에 끝내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그들은 또다시 그들의 추억의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 거였습니다. 결국 둘이 연인사이였고 입에담지 못할 말들로 상처를 주고 서로를 지우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과 클레멘타인...

정말 사랑했었는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건지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건지 혼란스럽기만 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예전에 어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남자는 마침내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자신을 남편이라 부르는 아내와 아기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겉돌기만 하죠. 오래전이라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게 현실이구나 싶었더랬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감정일까요? 열정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감정인걸까요? 우리는 보통 사랑이니 분노니 하는 희로애락의 감정들과 열정이니 용기니 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할 때 마치 가슴이나 심장에서 그것들이 생겨나는 양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이성과 감성을 통제할 뇌가 위치하는 머리는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력에나 쓰이는 걸로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랑이란 감정이 뇌 속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의한 일종의 환각작용이란 걸 숱하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착각인 셈이죠. ('매트릭스'를 떠올려 봅시다.)
결국,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단순한 기록들과 함께 그 기록들과 함께 매칭되어 저장되어 있던 느낌과 감정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과학적으론 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나를

기억해요...


아, 물론 오늘 포스팅을 이렇게 삭막한 결론으로 끝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들은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을만큼 힘든 사랑을 겪고 있습니다. 쿨하게 사랑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이전 포스팅의 주인공들처럼 조엘과 클레멘타인 역시 사랑에 얽매이는군요.
 
'이별의 기술'이란 책에 보면 사랑은 예측하지 못하는 강렬한 광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헤어질 때에도 정상적일 수 없다고 얘기 합니다. 때문에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죠.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또다른 하나를 만들어내는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사랑이 끝날 때에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임팩트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마치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이론과 비슷하게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둘은 다시 만나고 어제까지 사랑했던 그녀의 앞에서, 헤어진 이유를 알고도 서로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클레멘타인 : 난 완벽하지 않아.
조엘 : 너랑 헤어져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
클레멘타인 : 찾게 될거야. 넌 나에 대해서 다시 싫증날거고 답답함을 느끼게 될거야.
조엘 : ... 괜찮아 (OK)
클레멘타인 : ... 괜찮다고? 그래? (OK?) 그래~(OK~)

(뒷부분의 '오케이'는 해석이 참 힘드네요. 원작의 느낌으로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OK~

OK?


현실에서 이런 경우가 있다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정말 다시 사랑하게 되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기억상실증의 남자처럼 서로 전혀 못알아보고 그냥 그렇게 스쳐지나갔을지 모르죠. 그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감독이 만들어낸 로맨틱한 설정에 눈물지으며 '그렇구나~ 맞아 사랑이란 역시 그런거야~'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낭만주의가 만들어낸 조금 색다른 버전의 판타지인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중요한 한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언젠가 끝이 날 걸 알면서도 설령 그 끝이 끔찍할지라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죠.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행복해하면서도 아파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다시는 다치지 않으려고 새로운 사랑을 겁내는 건 영화 속 주인공들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사랑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는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뜨겁고 열정적이기보다는 쿨함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지만 불확실성이 팽배한 나머지 불안정으로 인한 불안함이 사회정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것도 불확실한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확실한 단 하나는 어쩌면 '사랑'이란 게 아닐까요? 전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이 사랑이란 감정이 어쩌면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 삭막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구원해 줄 수 있진 않을까요? 때문에 비록 그 사랑이란 것이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신화이고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난 화학작용으로 인한 착각일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해야하고 우리 마음 속 열정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어쩌면 우린 라쿠나 사의 고객들처럼 어제까지의 기억을 다 삭제당하고 사랑을 잊어버리도록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유도 없이 왠지 계속 눈길이 가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한 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혹시 당신을 사랑했던가요?' 라구요...

마지막으로 이터널 선샤인에 삽입되었던 Beck의 노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를 띄우면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까지 '지난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그 대단원의 마지막 작품 '이터널 선샤인'이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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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엘 2009.05.21 14:23 신고

    아...이 영화. 정말 별 생각없이 봤다가 로맨스 영화 중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돌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짐 캐리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맨날 코메디만 봐서 몰랐는데...
    게다가 참 멋지고 잘 생겼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랑과 기억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잊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했던 영화입니다.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21 19:38 신고

      짐 캐리는 진지한 거 할 때가 더 멋진 듯 해요~

  2. nubia 2009.05.30 11:47 신고

    작년에 한동안 영화만 보고 살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 때 노트북과 이터널 선샤인 등 참 많은 좋은 영화들을 봤지요.
    올해도 많이 보고 참 다양한 장르의 영화 리뷰를 많이 써기도 했는데
    요즘 건강문제로 잠시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진지하고 따뜻한 시각의 리뷰들이 전 참 좋네요.
    제가 글 쓰는 스타일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친근감도 들구요^^

    가끔씩 들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 공유할 수 있었음 싶네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34 신고

      좋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순수한 영화리뷰라기보단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식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스스로도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저도 블로그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 ^^



(6) 냉정과 열정 사이 - 낭만, 현실과의 갈등을 겪다

오늘은 영화음악이 워낙에 아름다웠던 작품을 다룰테니 배경음악을 깔고 시작해 볼까요?


만나야 할 사람들은 정말 언젠간 만나게 되는 걸까요? 운명의 장난과 필연적 상황들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더라도 서로의 맘 속에 간직하고만 있으면 언젠간 영화처럼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시 만나게 될때까지 우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처음 접한 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음악을 먼저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도 유명했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질 못했고 라디오나 광고 배경음악으로 나오던 'The Whole Nine Yards'나 'What a Coincidence' 같은 곡들이 나중에 영화음악이란 걸 알고 영화를 찾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벌써 여섯번째네요 이제 끝이 보입니다. 이번엔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참으로 많이 써먹었던 요시마타 료의 음악들과 진혜림의 미소와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기억되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터 속 남자는 어째 오다기리 조에 가까운 듯 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감독 나카에 이사무 (2001 / 일본)
출연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시노하라 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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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연인 준세(다케노우치 유타카) 아오이(진혜림)은 어떤 오해로 인해 안타깝게도 헤어지게 됩니다. 1994년, 둘은 이태리에서 재회하지만 준세는 과거를 잊고 잘 지낸다는 아오이의 말에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이 복원을 맡은 그림이 훼손당하는 사건까지 겪고나자 모든 것들을 잊고자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둘이 헤어진 게 오해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준세는 아오이에게 긴 편지를 보내게 되죠.
아오이는 부유한 사업가인 마브(마이클 웡)와 밀라노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준세에 대한 마음을 지우기 힘듭니다. 마브는 마음을 열지 않는 아오이에게 지쳐가고 둘의 관계는 점점 나빠집니다.
2001년, 준세는 마침내 복원사 일을 다시 하기 위해 피렌체로 돌아오고 두오모 성당에서 함께 하기로 했던 10년전 약속을 기억하고 성당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두사람... 두오모 성당에서의 만남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아주 낭만적이고 유쾌하게 다시 만나게 되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과 끝내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다면 우리의 준세와 아오이는 그 중간쯤 되는 곳에서 그리워하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고 갈등하다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그리워 하면서도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났을 때 준세는 아오이에게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는 게 나았다고 말합니다. 아오이는 다시 만나서 좋았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잘지내라며 돌아서고 말죠. 준세와 아오이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약하고 혼란스런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을 담아두고도 냉정한 척 애쓰려고도 하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다가도 어느 순간 냉정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도 다르지 않겠죠?

10년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준세와 아오이. 그 오랜 세월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던 두사람인데 둘을 함께 하지 못하게 했던 건 뭘까요? 그리고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한 건 또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영화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 같지 않은데 원작 소설에서는 준세의 열정과 아오이의 냉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요? 영화만을 접한 저로서는 냉정과 열정은 준세와 아오이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원하는,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열정. 그리고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는, 나는 잘 지낸다고 말하는 냉정함 사이에서 그들은 10년이란 세월을 돌고 돌아온 건 아닐까요?


포스팅을 이어오면서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길 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 학문적으로도 살펴봤고 영화속 이야기를 통해 여러 케이스를 살펴보았는데요. 우리 삶은 결국 그 깊이를 모를 불확실함과 그 안에서의 갈등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운명과 현실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말이죠... 그 안에서 어느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약한 우리들은 끝없이 갈등하게 되고 마침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 블로그 이름도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군요. 저 또한 그 원죄와 같은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훗~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우리는 정답을 모릅니다.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라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그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도 배웁니다. 불꽃처럼 뜨거운 인생을 살고 싶지만 그 불꽃이 나와 내 주변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해답은 나이를 먹는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정답을 찾기 위해서 혼자서 노력하고 갈등하고 그러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런게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준세는 고미술품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오래되고 시간이 흘러 그 가치가 퇴색한 작품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죠. 치이고리란 작가의 대작 한편을 복원하면서 준세는 자신의 감정도 일으켜 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따지고보면 그 복원이란 작업이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작업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요. 지난 포스팅들에서 열정이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에너지라고 했었는데요. 글쎄요, 과거에 대한 집착도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피렌체에서 아오이를 떠나보낸 준세는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뒤돌아 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요. 준세는 냉정을 조금은 배운 것 같고 아오이도 자신의 열정을 충분히 끌어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준세와 아오이는 밀라노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 드디어 함께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둘의 앞 날은 어제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거죠. 좀 더 자유로워지고 성숙해보이는 준세와 아오이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당신은 냉정인가요 열정인가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나요?



연인들에게 지키지도 못 할 10년 후 약속 꼭 하게 만들었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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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ubia 2009.05.30 11:45 신고

    제 블로그에 엮인 글을 보고 이제야 방문을 했네요.
    참 많이 늦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다른 이의 감상평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또 흥미롭고 기쁜 일이네요.

    글 잘 읽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음악과 피렌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
    다시 한 번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38 신고

      저도 포스팅 하느라 오랜만에 봤는데 좋더라구요 ^^


(4) 세렌디피티 - 낭만주의의 신봉자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보면 주인공 '나'는 연인 클로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우연한 상황을 확률로 설명하며 낭만적 운명론을 펼칩니다.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 한가지 일이 일어난 것을 우주적으로 해석하며 자신들의 만남이 그 어떤 만남들보다 특별하고 유니크 하다고 여기려고 하죠. 이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것... 우린 그런 걸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린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운명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던가 그녀는 나의 운명이라던가 하고 말이죠.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영화는 그렇게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렌디피티'입니다.

serendipity ; 운 좋은 뜻밖의 사건, 발견


세렌디피티
감독 피터 첼섬 (2001 / 미국)
출연 존 쿠색, 케이트 베킨세일, 몰리 섀넌, 제레미 피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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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는 50여년간 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다루었더랬습니다. 영화는 개봉을 안했으니 못보신 분들이 많을텐데 왠지 그 영화나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면 바로 이 영화 '세렌디피티'를 보신 건 아닌가요?

크리스마스 즈음 백화점 장갑매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나단(존 쿠삭)과 새라(케이트 베킨세일)는 왠지 모를 이끌림에 커피도 마시고 스케이트도 타고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둘은 각자 애인도 있죠. 아무튼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세상 모든 일은 운명에 달려있다고 믿는 새라는 제안을 하나 합니다. 5달러 지폐와 길거리에서 파는 헌 책 한 권에 서로의 연락처와 이름을 적은 후 나중에 그걸 다시 손에 넣게 되어 연락처를 알게 되면 그 때 다시 만나자고요. 새라와 달리 현실주의자인 조나단은 마지못해 그 제안에 따르게 되고 둘은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이때, 새라의 연락처를 적은 책이 바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미국에서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쏟아지는 연애소설의 대표작품이라는데 이 영화에선 두 주인공의 운명적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이 책을 구하려고 서점의 외국서적코너를 뒤졌지만 없었다~



시간은 흘러 몇 년이 지납니다. 조나단은 결혼을 며칠 앞두고 있고 새라도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지만 둘 다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조나단은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새라도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게 되죠. 그런 중에 둘은 각자 이상한 징조(?)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새라'란 이름을 계속 접한다거나 둘이 얘기했던 오래된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결국 조나단과 새라는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서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서로 스쳐지나가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결국 다시 만나게 됩니다. 마치 운명처럼요... 그리고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합니다. happily ever after~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죠?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신의 계시인 듯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난 지난 사랑의 소중한 추억들... 우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저 단순한 우연을 확대해석 하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어떤 절대자가 운명의 책에 씌어진대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보통 운명을 얘기할 때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운명을 피해 달아난 오이디푸스가 결국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인간은 자기 앞에 놓인 거대한 운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과연 그런건가요? 미미한 우주의 티끌같은 우리들은 운명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까요?

자, 이제 운명이니 영원이니 하는 단어들을 빼고 영화를 한 번 보도록 하죠. 조나단과 새라는 각자 운명의 이끌림 이전에 현재의 사랑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조나단은 결혼을 앞두고 사랑이 식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전히 여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해야하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새라는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아 행복해 하지만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점점 거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현실에서 열정이 식어갈 때 자연스럽게 몇년 전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립니다. 뭔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던, 일상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을진 몰라도 온 우주가 그 시간 둘의 만남을 위해 존재해 왔던 것 같은 그런 느낌... 다시 말하면 잠깐이나마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 같은 그 때를 말입니다.

사람들은 평범하기를 싫어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의 삶은 고유하고 특별하다고 여기고 싶어하죠. 그런 점에서 운명이나 우연은 그렇게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모티브에서 출발한 이 영화 '세렌디피티'는 현실보다는 운명과 우연이라는 낭만적인 가치에 더 비중을 두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인연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들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만나고 싶어서 못견디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어쩌면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판타지는 아닐까요?

시크릿의 이론(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주가 움직이고 우리가 집중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으로 이끌려 온다는 내용)은 운명이 아닌 선택이라는 가설에 근거를 부여해 줍니다. 시크릿이란 책이 한낱 자기개발서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여기 나온 이론은 과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인용하곤 합니다만) 이에 따르면 조나단과 새라는 결국 운명이 아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 그 인연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오게 된다고도 볼 수 있는 거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란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죠.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포스팅들에서 열정에 대해 얘기했던 거 기억나시나요? 열정은 현재에만 집중하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라서 우리가 열정에 사로잡힐 때 시간은 그 흐름을 멈춘다고요. 조나단과 새라에게 그 짧은 만남은 강렬한 열정이었고 몇 년의 시간쯤은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시간을 초월한 운명이 아니라 열정에 사로잡힌 두 사람의 선택이었던 거죠.

사랑이 영원할 것인지 아닌지도 운명이 아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함으로써 나 자신이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영원하길 바라는 낭만적인 사랑과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가는 현실적인 사랑... 여러분은 어느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영화 '세렌디피티'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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