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긴 했지만 흔히 말하는 노빠도 노사모도 아니었다. 그의 순수함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가 재임때 보였던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었고 이라크 파병 등 참여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도 했었다. 그의 마지막 몇달동안 돈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소식들이 들려올 때는 실망과 안타까움에 착잡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주 그가 언덕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안타까움과 슬픔 이전에...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직대통령들이 비리문제로 구속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나라가 외국에 어떻게 비칠지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와선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어떤 외신도 그런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고 심지어 국내 언론보다 더 정확히 사건의 핵심을 집어내고 있었다. 나는 결국 남의 시선이 무서워 내가 지지했던 사람의 아픔을 모른척 해 버린 비겁한 국민이었다.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과 나는 다를 게 뭐가 있나 참담했던 1주일이었다.



오늘 영결식이 끝난 이후의 노제에 다녀왔다. 왠지 그 자리에는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다른 이들처럼 그를 사랑했노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나는... 눈물도 자신있게 흘리지 못하는 나는 역시나 오늘도 멀찍이서 바라만 보다가 돌아왔다.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지난 1주일동안 TV며 인터넷 등지에서 보았떤 그의 꿈과 바람들 그의 마음씀씀이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가 원하던 세상이 바로 내가 바라던 세상인 것을,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돌이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전에 좀 더 박수를 보내주지 못했던 것에 가슴이 아팠고, 한편으로 어쩌면 이런 대통령을 다시는 맞이하지 못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미래에 가슴이 아팠다.

오늘 광화문과 시청앞에서 많은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TV와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서 울려퍼지는 함성소리를 들었다. 한편으론 희망으로 뿌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판받는 이른바 현 정부, 여당, 보수, 우파... 그들보다도 내가 무서운 건 바로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다. 난 예전부터 우리 국민들이 무서웠다. 2002년 월드컵 때 그 흔한 붉은 티셔츠를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붉은악마란 이름으로 하나되었던 모습에 감격하기도 했지만 한치의 다름도 수용하지 않고 한 길로만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무서워 그들과 함께 하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더 무서웠던 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열정이 사그라들고 뒤돌아 보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 그렇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때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결국 경제를 살리자며 MB를 뽑았고, 미국 소고기를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지금은 마트에서 싼 미국산 소고기를 사 먹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오늘 광화문에서 보았던 눈물에서 희망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 난 두렵다. 저 눈물들이 내일이면 잊혀질 위선일까봐 두렵고, 군중심리에서 나온 억지 눈물일까봐 두렵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영웅을 만들어 위안을 찾으려는 해프닝으로 끝날까봐 두렵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그 수많은 근조 리본들이 그를 현실이 아닌 신화 속 이야기로 남게 할까봐 두렵다. 그와 함께 희망도 한낱 판타지로 남을까 정말... 정말... 두렵다.



그러면서도 또 한 번 희망을 가져본다.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세지일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외롭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면 결코 외롭지 않을 거라는 희망... 그 희망만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에너지이고 가장 큰 방패이자 창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편히 가십시오...


p.s. 문화예술 블로그로 키워가려는 데 세상이 가만두질 않는구나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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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빌리 2009.05.30 11:20 신고

    그렇죠? 정말. 저도 서거날 봉하에 갔었고 어제 시청에도 있었지만 이 열기가 얼마나 지속될런지 솔직히 회의적이에요. 파란집에서 무서워 못나오는 명박이 일당들은 시간만 가면 다 될거라 생각할거에요. 작년 촛불때 그들은 배운거죠. 이래저래 생각이 많고 그냥 눈물만 나네요. 안치환 마른잎다시살아나 노래 듣고 싶네요.. 어제 윤도현은 좀 생뚱맞은거 같았어요. 그분위기에서 노래가 영... 힘내세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42 신고

      그랬나요? 길가에 있느라 광장쪽 분위기는 자세히 못봤는데...




덕수궁 앞 추모현장에서 사람들이 '아침이슬'을 부릅니다.

제 목소리도 살짝 들리는군요~ ㅎ

(p.s. 다음 팟tv에서 소리가 안나와 소스를 유튜브로 변경합니다)



그는 어쩌면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현실과 싸워 이기기에는 너무나 부족함이 많았던 몽상가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의 순수함이 좋았다.

그 순수함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불씨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에 좋았다.

내가 꿈만 꾸고 있던 걸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었다.

그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것도 돈과 관련해서라고 한다.


돈과 죽음... 필요하다면 잘잘못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제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 이상 옳은게 뭔지 그른게 뭔지 판단하기가 힘들어졌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선 건국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2002년 대통령 출마 연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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