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드라큘라

불멸의연인-베토벤

콜레라시대의사랑-플로렌티노


이 포스팅을 생각했던 때가 지난 2월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보고나서였으니 완성하는 데 거의 석달이나 걸린 셈이네요. 물론 그 때는 구체적인 방향도 없었고 블로그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습니다. 그저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었고 더 알고 싶었고 어쩌다보니 역사나 문학에 대한 공부까지 하게 되었네요. 이번 연작 포스팅은 참으로 중구난방이고 허접하기 그지 없었지만 제 자신으로서는 나름대로 치유의 과정과도 같은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을 겪고 사랑이란 것도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사랑은 참 힘이 듭니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끝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마 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나마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큘라'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그들처럼 사랑이 영원하길 바랬던 모습도,
'세렌디피티'의 그들처럼 운명의 장난에 내던져진 모습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그들처럼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모습도
모두 나를 비롯한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었습니다.

매디슨카운티의다리-로버트/프란체스카

세렌디피티-조나단/새라


우린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이성적, 합리적으로는 답이 뻔히 나오는데 왜 우리는 매번 과거에 얽매여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 해답을 찾아야 아픔도 치유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작품들에는 낭만주의라는 배경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열정적 사랑이란 가치가 어쩌면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판타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 열정적 사랑이란 환상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의 후예들은 아닐까요?

그런데, 판타지라는 걸 깨닫고 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건 왜일까요? 포스팅을 연재하면서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좁은 안목과 짧은 지식에서 나온 이런 논리로 쿨한 마음을 먹게 되는 건 무리인가 봅니다. ㅎ~

이터널선샤인 - 조엘/클레멘타인

냉정과열정사이 - 아오이/준세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정답이라고 여겼던 것이 내일이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란 제 블로그 제목처럼 우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 방황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정착하고도 싶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나 불완전한지요. 우린 끊임없이 갈 길을 몰라 힘들어 합니다.

어쩌면 내일도 오늘처럼 힘이 들겠지요. 어쩌면 우린 죽을 때까지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겠지요. 하지만 내일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또다시 힘들어지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을 스테파네트에게 바칩니다.)



p.s. 포스팅에 참고한 문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상세보기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상세보기
이별의 기술 상세보기
 기타 '낭만주의' 관련 네이버 지식인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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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ate.textcube.com 케이트 2009.06.10 13:44 신고

    이너털 선샤인 보고 많은 걸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
    역시, 상처받고 힘들 걸 알면서도 또 사랑에 퐁당 빠지겠죠~?

  2. Favicon of http://kate.textcube.com 케이트 2009.06.10 15:58 신고

    사랑은 상처받는 걸 허락하는 거라 ㅎㅎ 음..
    사랑의 치유법은 더욱 사랑하는것 밖에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ㅎ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6.29 03:19 신고

      댓글을 늦게 봤네요... ㅎ
      사랑하시길 바래요~ ^^


(5)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낭만주의의 후예들


지난 포스팅에서는 영화 '세렌디피티'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운명인지 선택인지 모르지만 주인공 남녀는 서로를 찾게 되고 결국 다시 만나게 되죠. 그런데 궁금한 게 한가지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후 잘 살았을까요? 사랑에 관한 포스팅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랑은 결국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라는 거죠.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사랑 그 엄청난 간극 속에 놓여있는 우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뒤를 돌아봐선 안되죠.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버리고 이상과 열정을 선택합니다. 알콩달콩한 마지막 장면을 보아하니 다행히 행복하게 잘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선 과연 어떨까요...? 운명적인 사랑 앞에서 현실을 선택하는 이들의 이야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입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 / 미국)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메릴 스트립, 애니 콜리, 빅터 슬레잭
상세보기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과외란 걸 첨 받아보았는데 국어교육과에 다니던 어여쁜 그 선생님께 전 '매디슨카운티의다리'란 책을 선물해 드렸었죠. (선생님은 제게 '뉴트롤스' 테잎을 사 주셨는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답니다 ㅎ)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그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어린 마음에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내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죠.

줄거리는 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시골마을에서 평범한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사는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 어느 날 낯선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타나고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고 나흘이란 짧은 시간동안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죠. 마지막 밤, 로버트는 함께 떠나자고 제안을 하고 프란체스카도 고민끝에 짐까지 꾸리지만 그녀에겐 버릴 수 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프란체스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현실을 선택하고 로버트를 떠나보냅니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확실한 감정... 그런 감정 앞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처럼 그 감정을 따라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뜨거운 열정은 접어두고 내 앞에 놓인 현실에 눈을 돌려 그저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프란체스카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을 하지요. '로버트와 함께 떠났어도 우리 감정은 변할 수 있고 남편과의 사랑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께 떠났다면... 그 사랑의 아름다움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프란체스카는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며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진 않았을 거란 걸 알게 됩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죽는 순간까지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합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생일이 되면 로버트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찾아가죠.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목걸이를 늘 목에 걸고 다니며 그녀를 위한 사진첩을 발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의 플로렌티노처럼 맹목적이거나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처럼 지독한 것 같진 같습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그렇게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도 그의 생각을 안하고 살아간 적이 없었단다.
우리 둘은 하나처럼 가깝게 느끼며 살았지.
그가 아니었다면
난 농장에 계속 남을 수 없었을 거야.


그렇습니다. 그들이 열정을 간직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전 포스팅의 주인공들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잠깐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지만 그 소중했던 사랑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버텨내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버려진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프란체스카는 해방될 수 있었을까요? 로버트는 그런 프란체스카를 언제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로버트의 방랑자로서의 삶을 프란체스카는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꿈과 이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꿈으로만 남겨 둘 때 아름다울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아름다워지는 것처럼요.
 
낭만주의 시절, 열정적 사랑의 개념이 생겨나고 불행과 체념이 아름다운 사랑의 기본조건으로 여겨지던 당시, 스탕달은 보바리 부인이란 소설 등을 통해 열정적인 사랑을 그리면서도 낭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곤 했습니다. 스탕달은 남녀간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런 스탕달이 보기에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나흘간의 사랑과 열정은 어쩌면 위험한 전염병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보니 우리 낭만주의의 후예들이 사랑이 더욱 힘들어진 지금의 잔인한 현실 속에서 참 잘 버텨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구요.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통속적인 불륜스토리이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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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달콤 2009.06.08 13:01 신고

    그 뉴트롤스가 올 9월에 내한한다네요.

    서울 아트록 페스티벌에서 http://cafe.daum.net/sarf



포스팅을 시작하며...


사랑은 영원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 사랑은 세상 그 누구의 사랑보다도 고결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은 흘러 사람은 떠나고 사랑은 변하고... 결코 영원한 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지금도 사랑을 떠나보내는 건 여전히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리고 늘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사랑이 내 삶의 끝까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고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의 책장을 덮지 못하고 눈물짓는 그들의 이야기를 참 동경했었습니다. 그들에 관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아마도 그들처럼 되길 바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난 왜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했었는지, 잔인한 현실을 알아버린 지금도 왜 그렇게 이별은 힘든 건지... 그들은 왜 그랬는지...

사랑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제 기억 속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그들에 관한 영화 몇 편을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1) 드라큘라 - 열정적 사랑의 배경, 낭만주의

1920년대 '노스페라투'를 시작으로 최근의 '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 영화는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내고 진화하면서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죠. 하지만 그 원조를 찾는다면 역시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일 것입니다. 브람 스토커가 1897년 소설로 첫 선을 보인 '드라큘라'는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며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영향을 끼쳤는데 1992년 개봉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는 원전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죠.

이미지를 구하다 보니 DVD 재킷이네요~ ㅎ


드라큘라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 / 미국)
출연 위노나 라이더, 게리 올드만,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상세보기


이미 유명한 영화라서 다들 보셨으리라 생각하고 줄거리는 짧게만 올리겠습니다.

15세기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악명을 떨치던 트란실베니아(지금의 루마니아 지역)의 블라드 왕자(게리 올드만)는 적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타가 자살하자 신을 저주하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 불사의 존재가 됩니다.
400여년 후, 트란실베니아에 더이상 빨아먹을 피가 없어진 드라큘라(드라쿨은 용을 뜻한답니다. 용의 아들이란 뜻이라죠~)는 런던으로 이주해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엘리자베타의 현신인 미나(위노나 라이더)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부분이 영화에서 가미된 로맨스적 요소입니다.)


미나는 처음엔 이 이방인을 거부하지만 알 수 없는 그의 마력에 빠져들고 마침내 400여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다짐하게 되죠. 결국 미나는 자청해서 흡혈귀의 삶을 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헬싱 교수(안소니 홉킨스)등을 비롯한 드라큘라 퇴치대가 조직되고 트란실베니아까지 쫓아가 드라큘라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엔 미나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됩니다.


드라큘라가 최후를 맞는 순간 미나의 대사가 이렇습니다.
"Our love is stronger than death."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흡혈귀 영화에서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한 마디는 바로 미나의 이 마지막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런데 그런 강렬한 사랑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여기서 잠깐 역사공부를 하고 넘어갈까요?

드라큘라가 쓰여진 19세기 유럽은 공장 매연으로 런던 하늘이 맑을 날이 없었을 정도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고, 영화에도 나오듯이 초기 무성영화가 등장하는 등 대중문화가 서서히 생겨나던 시대였습니다. 학교다닐때 배웠던 걸 떠올려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했던 고전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가 그 절정을 누리고 있을 때였죠.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성이 훨씬 가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절대왕정과 가톨릭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블라드 왕자가 교회를 등지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다짐한 것처럼 사랑을 위해서라면 한쪽이 희생하는 불평등한 관계도 이 때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죠. 무엇엔가 나를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열정이 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사실에 희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상대에게 빠져드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은 이 시절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답니다.

도색소설 보는중, 낭만주의는 대중문학도 발달시켰다

이무렵 초기 무성영화도 생겨났다



비록 1897년 출간된 소설버전의 '드라큘라'에는 드라큘라와 미나의 로맨스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고 하니 이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그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상상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19세기 무렵 열정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유명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해 보죠. 18세기 작품인데 이 소설로 인해 짝사랑에 빠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가요~ 죽음으로밖에 잊을 수 없을만큼 사랑은 강렬한 감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낭만주의와 함께 열정적 사랑이 문학의 단골 소재가 되기 시작하는데, 이 열정이란 것이 바로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 마음 상태인 것입니다. 보통 열정에 눈이 먼 사람들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죠. 내일 어떤 결과가 닥칠지 예측하지도 못하고 과거를 돌이키지도 못하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4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까지도 멈추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열정'이란 거죠.

제 생각이지만 적어도 이 당시에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식상한 조언 따위 해주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낭만주의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소설 '드라큘라'. 400년이란 긴 시간을 오직 하나의 사랑을 위해 버텨온 한 가엾은 영혼의 이야기가 흡혈귀 전설로 포장되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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