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명 : '사랑은 비를 타고' 14주년 공연
> 공연날짜 : 2009.9.25(금) 8시
> 공연장소 : 대학로 한성아트홀
> 캐스팅 : 동욱-임춘길, 동현-최성원, 미리-강연정


사비타의 추억

요즘 '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 포스팅 때문에도 그렇고 '렌트'랑 '지킬앤하이드' 내한공연 때문에도 그렇고 뮤지컬 처음 입문 하던 때를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90년대 중반 뮤지컬 붐이 처음 일기 시작하던 그 때 뮤지컬의 환상에 푹 빠져 이쪽 바닥에 발을 담그게 된 게 어느덧 10여년이 지났군요. 이제 그 시절의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은 대부분 젊은 꽃미남 배우들로 세대교체가 되어버렸고 저는 그동안 환상에 다가갈 수록 환상은 깨지고 만다는 걸 알아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공연을 보러 다니고 글을 쓰고... 뮤지컬은 아직도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은 비를 타고'를 다시 보게 되었으니 이거 옛날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군요. 1995년엔 참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에 처음 발을 딛게 해 준 '그리스'가 있었고 '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가 있었고 그리고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가 있었죠. ('지하철1호선'을 제가 이 해에 봤던가 확실하지 않네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삼성동 현대백화점 꼭대기층에는 '현대토아트홀'이란 소극장이 있었습니다. '사랑은비를타고'가 여기서 초연을 했는데요, 라이브밴드 연주에다가 피아노 두대가 한 줄로 놓여있는 지금 한성아트홀 버전과는 좀 다른 무대였더랬죠. 은 줄여서 '사비타'라고 하지만 처음엔 '사랑비'라고들 불렀습니다. 그리고 전 아직도 '사비타'란 줄임말보다는 '사랑비'란 어감이 더 좋습니다만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더군요.

언제였더라~ 정보소극장에서 단체관극 후 팬미팅을 진행중인 주군


극 중 장소이동 없이 실시간으로 아파트 거실에서만 진행되는 이 작품은 처음으로 '살롱뮤지컬'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실제 형제 사이로 그 어떤 동욱/동현 듀오보다 한층 와닿았던 남경주, 남경읍의 동시 캐스팅까지 서울뮤지컬컴퍼니의 이런 새로운 작품컨셉은 이후 '사랑에 빠질때'로 이어지며 작품성과 기획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케이스를 만들어 냅니다. '사비타'의 경우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롱런할만한 괜찮은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냈던 거죠.

'사비타'는 배해일 연출, 오은희 극본, 최귀섭 작곡 등 내로라 하는 스탭진으로도 유명했는데요 이분들이 당시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셨더랬는데 이 빠방한 트리플 라인업은 다음 해 '쇼코메디'로까지 이어집니다. 최귀섭씨는 '태권V'와 우리나라 최초뮤지컬 '살짜기옵서예'의 음악을 맡으셨던 故 최창권 선생님의 아들이자 '세월이가면'의 최호섭씨의 형이죠.

아무튼 그 '사랑은비를타고' 초연을 보고 난 후 넋이 나간 채 삼성동 거리를 노래하고 춤추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리고 공연뿐 아니라 티비에서 해 준 공연영상을 녹화해 놓고 얼마나 돌려보았던지 공연에 당장 출연을 해도 될 정도였다죠 아마~ 이후에도 문화일보 홀에서도 초연멤버로 한 두번 공연을 더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이텔 뮤지컬동호회 시삽을 하면서 봤던 김성기, 김학준씨의 버전이 생각나구요~ 인켈아트홀에서 주원성, 엄기준, 김소현, 윤공주 씨 등의 공연을 봤던 기억도 나네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번 사비타 공연이 아마 10번정도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티 사비타'가 만난 2009년의 사비타

솔직히 말하면 전 최근에도 주변에 사비타 본다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 말리곤 했었답니다. 그렇게나 좋아하고 푹 빠져 살았던 공연인데 언제부턴가 비추 목록에 올라가게 된 이유는 몇년 전 보았던 사비타에 대한 안좋은 기억때문이었습니다. 인켈아트홀(지금의 한성아트홀)에서 사비타 오픈런이 시작된 이후로 2006년인가 처음 보게 되었는데 사비타는 그동안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주원성, 서동균, 윤공주 캐스팅과 김성기, 엄기준, 김소현 캐스팅의 공연을 보았었는데. 과거 초연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스토리나 음악들은 모두 그대로였지만 조금 더 많이 가벼워졌더군요. 관객과의 과도한 스킨쉽이라던가 배우들이 무대에서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고 웃기도 하는 모습들은 초연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는 저에게 무척이나 좋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모 배우님의 실망스런 공연까지 더해 제 맘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던 '사랑비'의 추억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만나지 말라고 하는가 봅니다 ㅎ)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엄기준 : 몇살이야? 김소현 : 22이요~ 엄기준 : 무슨띠야?  김소현 : -_-;;

하지만 배우도 관객도 그런 분위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걸까요 아니면 제가 너무 고리타분했던 걸까요, 저의 무관심과는 상관없이 사비타는 여전히 롱런을 계속하며 2008년부터는 일본에서도 공연되는 등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된 2009년의 사비타는 또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2006년도보다 많이 안정되고 많이 진지해지고 업그레이드에 대한 노력이 많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임춘길


일단 임춘길씨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춘길씨 하면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라 할만한 분인데요 사실 노래나 연기보다는 탭이나 춤으로 훨씬 두각을 나타냈던 분입니다. 제 기억 속에도 이 분의 연기보다는 밥포시 스타일의 섹시한 안무나 42번가의 현란한 탭댄스가 더 각인되어 있네요. (개인적으로 예전에 크레이지포유 오디션 현장에서 연습하시는 걸 뵌적이 있는데 발이 안보이더군요 @.@) 워낙에 춤을 잘 추시는 분인지라 춤 못추는 설정의 동욱 역이란 얘길 듣고 중간에 한 건 하시겠구나 했더니 역시나 비의 브레이킹을 멋지게 보여주십니다. 무엇보다 동욱의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해 주셨습니다. 여성적이고 소심하고 깔끔한 동욱의 캐릭터의 그야말로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연기는 1세대다운 관록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상대 배우들과 주고받는 느낌들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셨을지 짐작이 되더군요.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최성원


최성원씨 역시 이름값을 톡톡히 해 주십니다. 최성원씨 역시 사비타가 처음이 아닌지라 무척이나 여유있는 동현을 선보입니다. 자칫 다혈질에 거칠게만 표현하게 되는 동현을 오히려 여유있게 표현해 세상 모든 풍파 다 겪어낸 초연함 같은 것이 보이더군요. 유미리와 농담을 주고받는 문제의 그 말장난씬도 아주 가볍지 않게 적당한 웃음으로 넘어가 줍니다. 무엇보다 현재 '영웅을 기다리며'에 출연하시면서 사비타 공연을 하신다고 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사비타야 워낙에 레파토리화 된 공연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대사나 노래에 익숙해서 금방 무대에 적응하긴 하겠지만 공연 두개를 같이 하면서 그정도 집중력을 보인다니 놀랐습니다.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강연정


유미리 역에는 신인배우 강연정씨였는데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출연경력을 가지고 있는만큼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비록 유미리 역할의 배우가 가져야 하는 필수조건인 섹시함이 살짝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그 2%의 아쉬움들을 다 덮어주는 게 바로 강연정씨의 성실함이었습니다. 참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배우였습니다. 캐릭터면 캐릭터, 노래면 노래 연습을 얼마나 했을지가 보이더군요.

그리고 작품 자체도 상당부분 업그레이드가 되었더군요. 전체적인 무대는 그대로이지만 아파트 안쪽을 표현한 실루엣 유리문이 신선했고, 무엇보다 노래가사가 많이 바뀌었더군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제가 초연공연 때 닳고닳도록 들었던 그 가사들이었던 것 같은데 가사가 입에 맞게 또 요즘 상황에 맞게 많이 바뀐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소라찜'이 '추어탕'으로 바뀐 거겠네요. 하긴 옛날에 공연 볼때도 '소라찜'이란 요리를 집에서 잘 해먹나 의아해 하곤 했었는데 추어탕이라니 훨씬 일상생활에 가까운 그럴법한 소재로 바뀐거죠.

한동안 사비타에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건 바로 이렇게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스탭들의 노력과 선후배 배우들의 성실함, 집중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작품의 흐름에서 벗어난 소소한 이벤트 같은 걸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순 있어도 결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런 배우들의 노력과 진실성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노래방 반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비타의 MR은 여전히 아쉬웠습니다. 사비타 정도의 공연이면 MR에 좀 더 투자를 하면 어떨까도 싶은데 라이브밴드의 '사비타'를 기억하고 있는 저로선 한 없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히 동욱, 동현 형제의 연탄곡을 MR로 듣는 느낌은 좀 안타깝더군요. 언젠가 좀 더 큰 무대에서 라이브밴드의 공연을 볼 수는 없는걸까요? 혹시 3000회정도면 가능하려나요?


언제나 그 자리에 '사비타'

'사랑은 비를 타고'가 14년을 달려오는 동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죽인다웨딩회사'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웨딩닷컴'으로 상호가 변경되었고
동욱이 소파위에서 마지못해서 추던 춤은 '룰라의 싸바싸바 엉덩이 춤'에서 '브아걸의 시건방 춤'으로 진화했고
이벤트 비용 '20만원'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40만원'으로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요리시간에는 '소라찜' 대신 '추어탕'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많은 것들이 바뀌어 왔지만 여전한 것들도 있네요.
잔소리 하는 형과 아웅다웅 하는 동생과
매사에 덜렁대고 실수투성이인 사회초년생의 모습
음식이 타 버려 호들갑을 떠는 형제의 모습도
그리고 두 형제가 연주하는 midnight blue in rainy day의 멜로디도 그대로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사비타는 그렇게 다른 듯 친숙하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더 많은 배우들이 피아노 연습을 해 사비타를 거쳐갈테고 많은 관객들이 사비타에서 또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갈테죠. 또 많은 것들이 바뀔 테지만 사람들이 사비타를 보고 가져가는 느낌은 그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추억같은 사비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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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lovemusical.net/ 풀잎피리 2009.10.06 22:37 신고

    잘 읽고 갑니다. 작년에 7번째로 보고 끊고 있는 작품이에요. 최성원 씨 참 아끼는 배우라 열심히 봤더랬죠. 그냥 그의 정겨운 동욱을 좋아합니다. 근데, 뭔가 작품이 그냥 지금과 참 엇나가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이 정도면 되었어! 라고 그만 보게 되었어요. ^^ 10년 전에 보셨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미투에서 소환해주신 바람에, 재미난 글도 잘 읽고 갑니다. =)




> 공연명 : 지킬앤하이드 투어 내한공연
> 공연날짜 : 2009.9.11
> 공연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캐스팅 : 브래드 리틀, 루시 몬더, 벨리다 월스톤, 완 잭슨, 베리 랭리쉬

지킬앤하이드 국내 라이센스 공연이 시작된 지 어언 5년이 되었습니다. 2004년 안그래도 잘나가던 조승우를 영화와 뮤지컬을 넘나드는 특A급 스타로 발돋움 시켰고 류정한, 김우형, 민영기, 서범석, 홍광호까지 노래 좀 한다 하는 선굵은 뮤지컬 배우들은 한번씩 거쳐갔던, 수많은 뮤지컬 팬들로 하여금 목에 핏대 세우며 현기증 나게 만들었던 '지금이순간'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지킬앤하이드... 그 내한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브로드웨이키드라고 자처하면서도 사실 고백하자면... 지킬앤하이드 공연은 이번에 첨 봤습니다. 대극장 뮤지컬 잘 안보는 데다가 가격적인 압박때문에 음악만 듣고 동영상만 보다 보니 그냥 본 거처럼 느껴지는 그런 공연이 되어버렸더랬죠.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 렌트 오리지널 공연과 함께 지킬앤하이드까지 걸출한 투어공연을 볼 수 있는 횡재를 얻어 세종문화회관엘 다녀왔습니다.

오리지널... 맞나요?


사실 이번 공연을 보기 전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바로 전 날 브래드 리틀의 립싱크 기사도 접한데다가 몇몇 누리꾼들의 좋지 않은 평도 보게 되어 혹여나 아시아 팬들을 무시한 수준낮은 투어공연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더랬죠. 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깐깐한 제가 기립박수 칠만한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 지킬 공연 처음 보는거라 다른 비교대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주연인 브래드리틀의 노래실력과 연기력은 물론 앙상블들의 빠지지 않는 실력과 무대 하며 그닥 나무랄 데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브래드 리틀은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으로 한국에도 왔었다는데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던 배우인지 미리 예습을 했더랬죠. 노래 잘 하더군요.



지킬/하이드는 브래드리틀 이전에도 초연멤버인 로버트쿠치올리를 비롯 많은 배우들이 거쳐갔습니다. 그 중에는 스키드로우의 멤버인 '세바스찬 바하'도 있었고 전격Z작전의 '데이빗 핫셀호프'도 있었죠. 다른 프로덕션의 경우 어땠는지 잘은 모르지만 국내 라이센스 공연과 비교해 보면 브래드리틀의 지킬은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조승우로 대표되는 국내 지킬의 경우 여리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지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브래드리틀의 지킬은 아주 단호하고 거친 지킬을 보여줍니다. 정신병원 이사회 장면의 경우 신사적이긴 하지만 지킬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사들을 조롱하고 질책하고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루시를 만나게 되는 술집 장면의 경우 어터슨에 이끌려 마지못해 클럽을 찾았던 국내 버전과 달리 오히려 지킬이 자기 총각파티 해달라며 어터슨을 끌고 가니 뭐 말 다했습니다.

간청하며 매달리던 조승우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브래드리틀의 지킬은 그가 이미 하이드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구나 알 수 있게 하는데요, 이러한 지킬의 성격변화는 단지 연기 해석의 차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지킬/하이드가 그저 다중인격으로만 비쳐졌었다면 인간이 선과 악 두가지 면을 모두 가지고 있고 이 두가지 성격을 분리시킨다는 지킬의 실험 설정에 좀 더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일상의 모습과 더 비슷한 거 같기도 하네요~)

아직 지킬인거죠~


그리고 다른 캐스트들 모두 안정된 실력과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어터슨과 댄버스경, 그리고 조연들과 앙상블 모두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위에선 엠마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하는 의견이 많은데 글쎄 제가 보기엔 그다지 나빠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네요.)

우려에 비해 무척이나 괜찮았던 브래드리틀의 지킬/하이드에 비해 루시는 아쉬운 캐릭터로 남습니다. 루시 캐릭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섹시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섹시함이라 함은 클럽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모'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지킬을 사로잡을 '관능미' 그리고 하이드에게 당하면서 관객들에게 동정표도 얻어내야 하는 약간의 '백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루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런데 이번 내한공연에서 루시는 그 어떤 모습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루시가 천박하고 섹시한 캐릭터라면 섹시함은 사라지고 천박함만이 남았다고나 할까요~ 루시가 지킬을 연모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지킬이 루시에게 혹하는 모습과 하이드가 루시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루시는 공중에서 그네를 타고 처음 등장하는데요 루시역을 맡은 배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요란하게 등장할만한 포스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new life' 등 노래는 무난하게 잘 하지만 워낙에 쟁쟁한 루시를 많이 봐온터라 그렇게 인상적이지가 않네요~ 차라리 우리 김선영씨나 소냐의 new life가 훨씬 더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개인적으로 루시 이미지로는 핫셀호프 지킬 동영상의 Coleen Sexton이 최고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섹시함과 백치미의 조화란... 이름부터가 벌써 다르지 않습니까?)

섹시함과 천진난만함과 귀여움을 다 갖춘 루시


기타 다른 프로덕션과 다른 자질구레한 점들

- 지킬의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정확히 노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반 아버지를 보내고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노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더군요.

- 루시 장면이 몇 장면 바뀌었습니다. 처음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노래하던 넋두리 송 'no one knows who I am'이 삭제 되었습니다. 의 순서가 스파이더에게 혼나고 나서로 바뀌었습니다.(090922 수정) 바로 그네타고 'bring on the man'을 부르며 등장하죠~ 그리고 핫셀호프 지킬의 동영상을 봐도 그렇고 브로드웨이 버전 OST를 들어봐도 그렇고 루시가 클럽에서 남자를 유혹하며 부르는 노래는 'good and evil'인데요, 이번엔 국내 라이센스 버전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bring on the man'을 들려줍니다.

어떤때는 bring on the man

어떤때는 good & evil


- 지킬의 실험실 무대가 바뀌었습니다. 소파가 놓여있는 지킬의 집무실에서 진행되던 많은 장면들이 새로 등장한 연구실 입구 세트(나선계단이 놓여있는 현관세트)가 자주 등장합니다. 'this is the moment'도 이 나선계단에서 시작하죠~ 실험실은 좀 더 규모가 커진 듯 합니다. 약병이 훨씬 많이 놓여 있는 거 같구요, 실험실 세트가 앞으로 밀려나올 때 백라이트는 멋진 빛의 갈라짐을 연출합니다.

저 높은 곳의 약병은 어찌 꺼내시려나


-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신하게 되는 약물 주사가 내복약으로 바뀌었습니다. 비커에 약물을 섞으면 실제로 색이 변하는 신기한 장면도 보여주는데요 지킬은 이 약을 비커채로 들이킵니다. 브래드는 주사맞기를 싫어하는 걸까요?

자 원샷~

- 루시가 하이드에게 상처를 입고 지킬의 연구실에 찾아가는 게 생각나시죠? 루시가 왜 상처를 입게 되었는지 장면이 나오는데 살짝 군더더기처럼 느껴지고 자세히 안보면 루시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 주교를 살해하는 장면에선 시체를 불태우는 장면이 그냥 때려죽이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불지르는 대신 그냥 시체를 밟고 서 있습니다.

불태워 죽여야 제 맛인데


- facade 장면도 신선한 장면이 많은데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하철1호선'을 연상시키는 기차장면입니다. 기차 좌석에 앉은 앙상블들이 바운스로 기차의 흔들림을 표현하며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기존작품보다 업그레이되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훌륭한 앙상블들~ (얼핏보면 레미제라블 같네)


- dangerous game의 설정도 살짝 바뀌었는데요, '루시를 유혹하는 하이드와 일방적으로 당하는 루시'의 구도에서 '하이드의 얼굴을 보려는 루시와 얼굴을 감추려는 하이드'의 컨셉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래 중에 'no no~ no no~' 하던 하이드의 코러스가 단지 음악적인 코러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는 설정으로 사용되어 좀더 드라마틱한 넘버가 되었네요.

- your work - nothing more 장면은 사막의 활용으로 4명의 배우를 동등하게 드러낸 다른 버전과 달리 엠마 부녀를 사막뒤로 숨겨 보조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이드로 분한 영상이 아버지 액자에 투사되는 게 독특하더군요.

- 마지막 지킬과 엠마의 결혼식 장면의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국내버전 핫셀호프 버전 모두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번엔 관객을 등지고 서 있더군요~


오리지널 공연이란?


이번 지킬앤하이드 공연 포스터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오리지널을 향한 13년간의 기다림'이라구요~ 그리고 각종 기사들에도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이다'라고 언급이 되었더랬죠. 그런데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오리지널이란 어떤 걸까요?

오리지널이라 함은 연극이나 뮤지컬 등 어떤 공연의 초연을 말합니다. 이건 사전상에도 나와 있죠. 그 공연의 최초 공연을 오리지널 공연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 뮤지컬 CD에 'Original Broadway Cast'라고 씌어 있으면 브로드웨이 초연멤버들이 녹음을 했다는 겁니다. 그 캐릭터를 처음 분석하고 연기하고 그 노래를 처음 해석하고 부른 배우들이 바로 오리지널 멤버들인 만큼 이 '최초'라는 단어는 공연장르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매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영화나 다른 장르에 비해 캐스팅별로 수많은 버전을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의 경우 이 오리지널 공연은 뮤지컬 팬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이번 지킬앤하이드는 오리지널 공연이었을까요?

지킬앤하이드는 1990년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과는 많이 다른 버전이었겠지만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앨리 극장(Alley Theatre)에서 호평을 받으며 막을 올렸죠. 이후 1995년에는 전미 순회공연이 시작되는데 이때 멤버가 바로 로버트 쿠치올리(지킬/하이드)와 린다 에더(루시)입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7년 브로드웨이에 이 멤버가 그대로 입성해 플리머스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 공연이 우리가 흔히 초연으로 알고 있는 공연이고 지킬앤하이드 CD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그 버전의 공연이랍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인거죠.

그러니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번 지킬앤하이드는 투어팀일 뿐 오리지널 팀이라고 할 만한 어떤 연결고리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판권을 사들여 우리 배우들로 공연하게 되는 라이센스 공연과 차별을 두어 '본토에서 온 팀이다' 라는 뜻으로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같은 기간 내한한 '렌트' 팀이 '아담파스칼', '안소니랩' 등 초연멤버들로 훌륭한 공연을 보여 준 것을 생각하면 좀 아쉬운 대목입니다. 제작사 측에서도 이를 의식했는지 어쨌는지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최초 내한공연'이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하더군요. 오리지널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았더라면 그냥 좋은 공연으로 기억에 남았을 텐데 괜한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오리지널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와 상당히 높아져 있는 관객들의 수준을 생각해 볼 때 제작사 측에서 굳이 '오리지널'이란 타이틀로 홍보를 해야만 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의 아쉬움과 홍보에 있어서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들을 모두 덮어줄만큼 공연자체는 너무나도 훌륭했던 지킬앤하이드 리뷰였습니다. fin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나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해당 제작사와 개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이미지 출처 : 트루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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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방미인 2009.09.23 12:59 신고

    트랙백 타고 들어왔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미리 알고 두번째 봤다면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추어 관객의 입장에서 브래드리틀의 지킬앤하이드는 분명히 조승우의 지킬앤하이드와 느낌이 달랐습니다. 무대장치나 노래순서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소화해냈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더군요. 지킬박사가 먼저 술마시러가자고 친구에게 얘기하는 장면이나 하이드의 목소리에서도 sympathy, tenderness 같은 단어들은 감미롭게 들리는 것이 브래드리틀은 절대선, 절대악은 없다는 나름의 해석을 무대에서 보여주려는 디테일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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