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픕니다.

단지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배워왔고 알고 있던 모든 옳고 그름의 가치관이 무너졌기 때문에 슬픕니다.
당장 광화문에는 박정희의 초상화가 등장했고
TV에는 유신시절의 영상이 나오며 팡파르가 울려퍼지고 있는데
단 한 번도 현실로 받아들여본 적 없는
어두운 과거라고 배워왔던 그 역사를 이젠 받아들이라 하는 듯 합니다.
혼란스럽고 먹먹하기만 합니다.

나중에 후세에게 과거 독재가 어떠했고 민주화가 어떠했고 언론통제가 어떠했으며
그 때 나는 무얼 했었다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누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나에게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현실이 내 이상과는 너무나 멀리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역감정과 세대격차의 현실을 알았고 언론의 힘을 알았습니다.
그 격차들이 줄어들기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겼다고 깔보지 말고 졌다고 주눅들지 맙시다.
양쪽 다 이 나라의 절반입니다.
서로 거친 언어로 욕하지 맙시다. 귀 기울이고 들어봅시다.
어디 딴 세상 사람들 아니고 내가 길 가다 마주치는 두 명 중 한 명입니다.

투표한 사람들은 이제 지켜봅시다.
내가 뽑았다고 다 용서하지도 말고
내가 안 뽑았다고 무조건 욕하지 맙시다.
못하면 못한대로 비판하고 잘하면 잘한대로 칭찬합시다.
우린 투표를 한 거지 종교를 만든 게 아니니까.

내가 지지했던 문재인님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당신을 처음부터 신뢰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신 덕분에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쓰러지지 마십시오.
안철수님 꼭 돌아와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주십시오. 국민들은 당신의 메세지를 잊지 않을 겁니다.
진실을 위해 모든 것 다 버리고 노력했던 언론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당신들의 노력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계속 옆에 있을게요.

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다만 잊지는 않으렵니다.
현실을 알았으니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기다리렵니다.

이제 TV는 꺼 두고 책을 좀 더 가까이 하렵니다.
온라인은 좀 닫아두고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며 대화를 나눠 보렵니다.

그렇게 다시 희망을 얘기합시다.
우리 다시 춤을 춥시다.

2012. 12. 20
대한민국 국민 주재규


  1. Favicon of http://o.com sd 2012.12.20 15:12 신고

    님의 말씀이 정답이네요

    건강관리하며 취미나 즐기며 살아야겠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라는 게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옳은 건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안철수의 전격 사퇴로 일단락된 듯 하다. 일부에선 단일화냐 사퇴냐를 문제 삼고 원만한 합의, 아름다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과정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생각해 보면 대권이라는 절대 권력을 앞에 두고 '아름다운' 합의가 어찌 가능할까 싶다.

이 둘을 보며 프로도와 샘이 떠오른 건 나 뿐인가


이거... 꼭 버려야 돼?



반지의 제왕에 보면 절대반지를 파괴하고 절대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인간, 드워프, 엘프 3종족의 최정예 멤버들이 힘을 합쳐 반지 원정대가 꾸려진다. 하지만 절대반지 앞에서 평정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 그 최정예의 반지원정대도 결국 와해되고 만다.


어쩌면 우리들 투표원정대


아무리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을 놓고 누가 선뜻 양보 하고 싶을까. 그것도 서로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이는 사람들끼리 내심 상대방이 빠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당연하리라. 그러니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도 있고 그런 거지. 그런 점에서 후보등록을 몇 일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안철수의 사퇴는 어쩌면 더 진흙탕 싸움이 돼 서로 이미지에 흠집이 나기 전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캠프에서 보여준 볼썽사나운 모습은 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대통령이란 절대 권력 앞에서, 그것도 꽤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던 사람이 그 자리를 포기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애초에 안철수의 역할은 여기까지였고 이 모든 과정이 계획된 것이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후보 사퇴를 결정하는 데 있어 엄청난 인간적 고뇌가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 정의롭던 보로미르도 절대반지 앞에선 돌아버리고 마는 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고 방식이야 어찌됐든 이제 야권 단일화는 이루어졌는데 이제 문제는 우리 유권자들이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당연히 잘 된 일일테고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야 어차피 이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 없이 자기네 후보 찍겠지만
안철수 지지자들 중 단일화 과정이 맘에 안 든다고 투표를 안한다느니 새누리당을 찍겠다느니 하는 모습들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사퇴했으니 그 아쉬움은 당연할테고 그 감정은 어쩌면 분노와 배신감과도 같을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안철수가 처음 출마를 결정했을 때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안철수의 지지자들이 그저 안철수라는 개인이 좋아서 선택한 걸까? 보수와 진보를 떠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그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출마할 수 밖에 없던 배경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철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MB정부 5년 동안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대한민국. 거기서 비롯된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 사람들의 부름에 역사적 책임을 짊어지기로 한 안철수.

물론 앞으로 문재인 후보의 행보와 민주당의 행태를 눈여겨 봐야 하겠지만 분명히 투표를 포기하거나 정권을 연장시키는 쪽에 투표하는 것은 절대 안철수가 바라는 게 아니다. 안철수가 진흙탕에 뛰어들고 후보 사퇴를 하기까지 겪었던 고뇌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 번 이해했으면 한다.

포인트는 간단하다...






사우론이 군대를 일으키고 있는데 프로도가 맘에 안 든다고 원정대에서 빠질 텐가!






p.s.




posted by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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