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드라큘라

불멸의연인-베토벤

콜레라시대의사랑-플로렌티노


이 포스팅을 생각했던 때가 지난 2월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보고나서였으니 완성하는 데 거의 석달이나 걸린 셈이네요. 물론 그 때는 구체적인 방향도 없었고 블로그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습니다. 그저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었고 더 알고 싶었고 어쩌다보니 역사나 문학에 대한 공부까지 하게 되었네요. 이번 연작 포스팅은 참으로 중구난방이고 허접하기 그지 없었지만 제 자신으로서는 나름대로 치유의 과정과도 같은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을 겪고 사랑이란 것도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사랑은 참 힘이 듭니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끝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마 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나마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큘라'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그들처럼 사랑이 영원하길 바랬던 모습도,
'세렌디피티'의 그들처럼 운명의 장난에 내던져진 모습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그들처럼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모습도
모두 나를 비롯한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었습니다.

매디슨카운티의다리-로버트/프란체스카

세렌디피티-조나단/새라


우린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이성적, 합리적으로는 답이 뻔히 나오는데 왜 우리는 매번 과거에 얽매여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 해답을 찾아야 아픔도 치유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작품들에는 낭만주의라는 배경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열정적 사랑이란 가치가 어쩌면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판타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 열정적 사랑이란 환상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의 후예들은 아닐까요?

그런데, 판타지라는 걸 깨닫고 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건 왜일까요? 포스팅을 연재하면서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좁은 안목과 짧은 지식에서 나온 이런 논리로 쿨한 마음을 먹게 되는 건 무리인가 봅니다. ㅎ~

이터널선샤인 - 조엘/클레멘타인

냉정과열정사이 - 아오이/준세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정답이라고 여겼던 것이 내일이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란 제 블로그 제목처럼 우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 방황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정착하고도 싶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나 불완전한지요. 우린 끊임없이 갈 길을 몰라 힘들어 합니다.

어쩌면 내일도 오늘처럼 힘이 들겠지요. 어쩌면 우린 죽을 때까지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겠지요. 하지만 내일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또다시 힘들어지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을 스테파네트에게 바칩니다.)



p.s. 포스팅에 참고한 문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상세보기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상세보기
이별의 기술 상세보기
 기타 '낭만주의' 관련 네이버 지식인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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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ate.textcube.com 케이트 2009.06.10 13:44 신고

    이너털 선샤인 보고 많은 걸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
    역시, 상처받고 힘들 걸 알면서도 또 사랑에 퐁당 빠지겠죠~?

  2. Favicon of http://kate.textcube.com 케이트 2009.06.10 15:58 신고

    사랑은 상처받는 걸 허락하는 거라 ㅎㅎ 음..
    사랑의 치유법은 더욱 사랑하는것 밖에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ㅎ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6.29 03:19 신고

      댓글을 늦게 봤네요... ㅎ
      사랑하시길 바래요~ ^^



(7) 이터널 선샤인 -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포스팅 할까 말까 무척 망설였습니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영화들이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끝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사랑이 시간이 아닌 기억을 넘어선다는 다소 다른 설정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현실에서는 절대 경험해볼 수 없는 설정의 허구성때문에 고민을 하긴 했지만 고민끝에 연작 포스팅의 마지막 작품으로 정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에 있습니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남는다... 고 말하는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제목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알렉산더 포프의 격언의 인용이다


이터널 선샤인
감독 미셸 공드리 (2004 / 미국)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일라이저 우드
상세보기

출근길에 충동적으로 회사 땡땡이치고 몬타우크 해변으로 떠나는 조엘(짐 캐리)은 우연히 푸른머리의 발랄한 아가씨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게 되고 금새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며칠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진 연인들이었습니다. 둘의 관계가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 사에 의뢰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던 것인데요...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에 충격을 받은 조엘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워가면서 둘의 지난 사랑의 과정을 되짚어가면서 영화는 진행됩니다.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작과 끔찍했던 사랑의 종말, 그 모든 기억들이 조엘의 눈앞에서 하나둘씩 사라져가자 조엘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 기억의 삭제과정에서 도망치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기술자들의 밤샘작업(?) 끝에 끝내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그들은 또다시 그들의 추억의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 거였습니다. 결국 둘이 연인사이였고 입에담지 못할 말들로 상처를 주고 서로를 지우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과 클레멘타인...

정말 사랑했었는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건지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건지 혼란스럽기만 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예전에 어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남자는 마침내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자신을 남편이라 부르는 아내와 아기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겉돌기만 하죠. 오래전이라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게 현실이구나 싶었더랬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감정일까요? 열정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감정인걸까요? 우리는 보통 사랑이니 분노니 하는 희로애락의 감정들과 열정이니 용기니 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할 때 마치 가슴이나 심장에서 그것들이 생겨나는 양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이성과 감성을 통제할 뇌가 위치하는 머리는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력에나 쓰이는 걸로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랑이란 감정이 뇌 속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의한 일종의 환각작용이란 걸 숱하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착각인 셈이죠. ('매트릭스'를 떠올려 봅시다.)
결국,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단순한 기록들과 함께 그 기록들과 함께 매칭되어 저장되어 있던 느낌과 감정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과학적으론 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나를

기억해요...


아, 물론 오늘 포스팅을 이렇게 삭막한 결론으로 끝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들은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을만큼 힘든 사랑을 겪고 있습니다. 쿨하게 사랑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이전 포스팅의 주인공들처럼 조엘과 클레멘타인 역시 사랑에 얽매이는군요.
 
'이별의 기술'이란 책에 보면 사랑은 예측하지 못하는 강렬한 광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헤어질 때에도 정상적일 수 없다고 얘기 합니다. 때문에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죠.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또다른 하나를 만들어내는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사랑이 끝날 때에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임팩트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마치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이론과 비슷하게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둘은 다시 만나고 어제까지 사랑했던 그녀의 앞에서, 헤어진 이유를 알고도 서로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클레멘타인 : 난 완벽하지 않아.
조엘 : 너랑 헤어져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
클레멘타인 : 찾게 될거야. 넌 나에 대해서 다시 싫증날거고 답답함을 느끼게 될거야.
조엘 : ... 괜찮아 (OK)
클레멘타인 : ... 괜찮다고? 그래? (OK?) 그래~(OK~)

(뒷부분의 '오케이'는 해석이 참 힘드네요. 원작의 느낌으로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OK~

OK?


현실에서 이런 경우가 있다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정말 다시 사랑하게 되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기억상실증의 남자처럼 서로 전혀 못알아보고 그냥 그렇게 스쳐지나갔을지 모르죠. 그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감독이 만들어낸 로맨틱한 설정에 눈물지으며 '그렇구나~ 맞아 사랑이란 역시 그런거야~'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낭만주의가 만들어낸 조금 색다른 버전의 판타지인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중요한 한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언젠가 끝이 날 걸 알면서도 설령 그 끝이 끔찍할지라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죠.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행복해하면서도 아파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다시는 다치지 않으려고 새로운 사랑을 겁내는 건 영화 속 주인공들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사랑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는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뜨겁고 열정적이기보다는 쿨함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지만 불확실성이 팽배한 나머지 불안정으로 인한 불안함이 사회정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것도 불확실한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확실한 단 하나는 어쩌면 '사랑'이란 게 아닐까요? 전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이 사랑이란 감정이 어쩌면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 삭막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구원해 줄 수 있진 않을까요? 때문에 비록 그 사랑이란 것이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신화이고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난 화학작용으로 인한 착각일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해야하고 우리 마음 속 열정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어쩌면 우린 라쿠나 사의 고객들처럼 어제까지의 기억을 다 삭제당하고 사랑을 잊어버리도록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유도 없이 왠지 계속 눈길이 가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한 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혹시 당신을 사랑했던가요?' 라구요...

마지막으로 이터널 선샤인에 삽입되었던 Beck의 노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를 띄우면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까지 '지난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그 대단원의 마지막 작품 '이터널 선샤인'이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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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엘 2009.05.21 14:23 신고

    아...이 영화. 정말 별 생각없이 봤다가 로맨스 영화 중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돌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짐 캐리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맨날 코메디만 봐서 몰랐는데...
    게다가 참 멋지고 잘 생겼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랑과 기억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잊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했던 영화입니다.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21 19:38 신고

      짐 캐리는 진지한 거 할 때가 더 멋진 듯 해요~

  2. nubia 2009.05.30 11:47 신고

    작년에 한동안 영화만 보고 살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 때 노트북과 이터널 선샤인 등 참 많은 좋은 영화들을 봤지요.
    올해도 많이 보고 참 다양한 장르의 영화 리뷰를 많이 써기도 했는데
    요즘 건강문제로 잠시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진지하고 따뜻한 시각의 리뷰들이 전 참 좋네요.
    제가 글 쓰는 스타일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친근감도 들구요^^

    가끔씩 들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 공유할 수 있었음 싶네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34 신고

      좋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순수한 영화리뷰라기보단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식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스스로도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저도 블로그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 ^^



(6) 냉정과 열정 사이 - 낭만, 현실과의 갈등을 겪다

오늘은 영화음악이 워낙에 아름다웠던 작품을 다룰테니 배경음악을 깔고 시작해 볼까요?


만나야 할 사람들은 정말 언젠간 만나게 되는 걸까요? 운명의 장난과 필연적 상황들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더라도 서로의 맘 속에 간직하고만 있으면 언젠간 영화처럼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시 만나게 될때까지 우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처음 접한 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음악을 먼저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도 유명했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질 못했고 라디오나 광고 배경음악으로 나오던 'The Whole Nine Yards'나 'What a Coincidence' 같은 곡들이 나중에 영화음악이란 걸 알고 영화를 찾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벌써 여섯번째네요 이제 끝이 보입니다. 이번엔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참으로 많이 써먹었던 요시마타 료의 음악들과 진혜림의 미소와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기억되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터 속 남자는 어째 오다기리 조에 가까운 듯 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감독 나카에 이사무 (2001 / 일본)
출연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시노하라 료코
상세보기

1991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연인 준세(다케노우치 유타카) 아오이(진혜림)은 어떤 오해로 인해 안타깝게도 헤어지게 됩니다. 1994년, 둘은 이태리에서 재회하지만 준세는 과거를 잊고 잘 지낸다는 아오이의 말에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이 복원을 맡은 그림이 훼손당하는 사건까지 겪고나자 모든 것들을 잊고자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둘이 헤어진 게 오해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준세는 아오이에게 긴 편지를 보내게 되죠.
아오이는 부유한 사업가인 마브(마이클 웡)와 밀라노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준세에 대한 마음을 지우기 힘듭니다. 마브는 마음을 열지 않는 아오이에게 지쳐가고 둘의 관계는 점점 나빠집니다.
2001년, 준세는 마침내 복원사 일을 다시 하기 위해 피렌체로 돌아오고 두오모 성당에서 함께 하기로 했던 10년전 약속을 기억하고 성당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두사람... 두오모 성당에서의 만남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아주 낭만적이고 유쾌하게 다시 만나게 되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과 끝내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다면 우리의 준세와 아오이는 그 중간쯤 되는 곳에서 그리워하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고 갈등하다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그리워 하면서도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났을 때 준세는 아오이에게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는 게 나았다고 말합니다. 아오이는 다시 만나서 좋았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잘지내라며 돌아서고 말죠. 준세와 아오이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약하고 혼란스런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을 담아두고도 냉정한 척 애쓰려고도 하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다가도 어느 순간 냉정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도 다르지 않겠죠?

10년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준세와 아오이. 그 오랜 세월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던 두사람인데 둘을 함께 하지 못하게 했던 건 뭘까요? 그리고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한 건 또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영화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 같지 않은데 원작 소설에서는 준세의 열정과 아오이의 냉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요? 영화만을 접한 저로서는 냉정과 열정은 준세와 아오이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원하는,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열정. 그리고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는, 나는 잘 지낸다고 말하는 냉정함 사이에서 그들은 10년이란 세월을 돌고 돌아온 건 아닐까요?


포스팅을 이어오면서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길 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 학문적으로도 살펴봤고 영화속 이야기를 통해 여러 케이스를 살펴보았는데요. 우리 삶은 결국 그 깊이를 모를 불확실함과 그 안에서의 갈등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운명과 현실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말이죠... 그 안에서 어느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약한 우리들은 끝없이 갈등하게 되고 마침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 블로그 이름도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군요. 저 또한 그 원죄와 같은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훗~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우리는 정답을 모릅니다.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라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그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도 배웁니다. 불꽃처럼 뜨거운 인생을 살고 싶지만 그 불꽃이 나와 내 주변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해답은 나이를 먹는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정답을 찾기 위해서 혼자서 노력하고 갈등하고 그러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런게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준세는 고미술품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오래되고 시간이 흘러 그 가치가 퇴색한 작품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죠. 치이고리란 작가의 대작 한편을 복원하면서 준세는 자신의 감정도 일으켜 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따지고보면 그 복원이란 작업이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작업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요. 지난 포스팅들에서 열정이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에너지라고 했었는데요. 글쎄요, 과거에 대한 집착도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피렌체에서 아오이를 떠나보낸 준세는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뒤돌아 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요. 준세는 냉정을 조금은 배운 것 같고 아오이도 자신의 열정을 충분히 끌어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준세와 아오이는 밀라노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 드디어 함께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둘의 앞 날은 어제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거죠. 좀 더 자유로워지고 성숙해보이는 준세와 아오이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당신은 냉정인가요 열정인가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나요?



연인들에게 지키지도 못 할 10년 후 약속 꼭 하게 만들었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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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ubia 2009.05.30 11:45 신고

    제 블로그에 엮인 글을 보고 이제야 방문을 했네요.
    참 많이 늦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다른 이의 감상평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또 흥미롭고 기쁜 일이네요.

    글 잘 읽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음악과 피렌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
    다시 한 번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38 신고

      저도 포스팅 하느라 오랜만에 봤는데 좋더라구요 ^^


(5)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낭만주의의 후예들


지난 포스팅에서는 영화 '세렌디피티'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운명인지 선택인지 모르지만 주인공 남녀는 서로를 찾게 되고 결국 다시 만나게 되죠. 그런데 궁금한 게 한가지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후 잘 살았을까요? 사랑에 관한 포스팅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랑은 결국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라는 거죠.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사랑 그 엄청난 간극 속에 놓여있는 우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뒤를 돌아봐선 안되죠.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버리고 이상과 열정을 선택합니다. 알콩달콩한 마지막 장면을 보아하니 다행히 행복하게 잘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선 과연 어떨까요...? 운명적인 사랑 앞에서 현실을 선택하는 이들의 이야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입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 / 미국)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메릴 스트립, 애니 콜리, 빅터 슬레잭
상세보기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과외란 걸 첨 받아보았는데 국어교육과에 다니던 어여쁜 그 선생님께 전 '매디슨카운티의다리'란 책을 선물해 드렸었죠. (선생님은 제게 '뉴트롤스' 테잎을 사 주셨는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답니다 ㅎ)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그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어린 마음에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내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죠.

줄거리는 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시골마을에서 평범한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사는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 어느 날 낯선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타나고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고 나흘이란 짧은 시간동안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죠. 마지막 밤, 로버트는 함께 떠나자고 제안을 하고 프란체스카도 고민끝에 짐까지 꾸리지만 그녀에겐 버릴 수 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프란체스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현실을 선택하고 로버트를 떠나보냅니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확실한 감정... 그런 감정 앞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처럼 그 감정을 따라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뜨거운 열정은 접어두고 내 앞에 놓인 현실에 눈을 돌려 그저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프란체스카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을 하지요. '로버트와 함께 떠났어도 우리 감정은 변할 수 있고 남편과의 사랑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께 떠났다면... 그 사랑의 아름다움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프란체스카는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며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진 않았을 거란 걸 알게 됩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죽는 순간까지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합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생일이 되면 로버트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찾아가죠.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목걸이를 늘 목에 걸고 다니며 그녀를 위한 사진첩을 발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의 플로렌티노처럼 맹목적이거나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처럼 지독한 것 같진 같습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그렇게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도 그의 생각을 안하고 살아간 적이 없었단다.
우리 둘은 하나처럼 가깝게 느끼며 살았지.
그가 아니었다면
난 농장에 계속 남을 수 없었을 거야.


그렇습니다. 그들이 열정을 간직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전 포스팅의 주인공들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잠깐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지만 그 소중했던 사랑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버텨내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버려진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프란체스카는 해방될 수 있었을까요? 로버트는 그런 프란체스카를 언제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로버트의 방랑자로서의 삶을 프란체스카는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꿈과 이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꿈으로만 남겨 둘 때 아름다울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아름다워지는 것처럼요.
 
낭만주의 시절, 열정적 사랑의 개념이 생겨나고 불행과 체념이 아름다운 사랑의 기본조건으로 여겨지던 당시, 스탕달은 보바리 부인이란 소설 등을 통해 열정적인 사랑을 그리면서도 낭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곤 했습니다. 스탕달은 남녀간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런 스탕달이 보기에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나흘간의 사랑과 열정은 어쩌면 위험한 전염병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보니 우리 낭만주의의 후예들이 사랑이 더욱 힘들어진 지금의 잔인한 현실 속에서 참 잘 버텨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구요.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통속적인 불륜스토리이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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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달콤 2009.06.08 13:01 신고

    그 뉴트롤스가 올 9월에 내한한다네요.

    서울 아트록 페스티벌에서 http://cafe.daum.net/sarf


(3) 콜레라 시대의 사랑 -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란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영화 '세렌디피티'에서였습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한 여자와 현실을 믿는 한 남자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영화죠. 그 영화에서 여자는 거리에서 산 책 안쪽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그 책을 다시 팔아버립니다. 운명적으로 그 책을 남자가 다시 얻게 되면 그때 만나자 하고 말이죠~ 둘의 만남에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던 그 책이 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마이크 뉴웰 감독은 '네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찍었습니다.


 
콜레라의 사랑
감독 마이크 뉴웰 (2007 / 미국)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지오바나 메조기오르노, 벤자민 브렛,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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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우리나라엔 아직 개봉을 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로 읽으신분들이 계신지 안계신지 모르지만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죠.

역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그의 이름이죠. (하비에르 바르뎀이 10대에서 80대까지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영화보면서 벤자민 버튼이 생각났는데 분장은 벤자민 버튼에 훨씬 밀리더군요 ㅎ) 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는 부유한 상인의 딸인 페르미나(지오바나 메조지오르노)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뜨거운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환경의 차이로 반대에 부딪히고 마침내 페르미나는 의사인 우르비노(벤자민 브랫)와 결혼을 하게 되죠. 플로렌티노는 사랑하는 페르미나를 잃고 절망하지만 곧 새로운 희망을 찾고 인생의 결심을 하게 됩니다. 평생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말이죠. 그녀의 결혼생활을 멀리서 지켜보며 평생을 기다립니다. 무려 51년 9개월 하고도 4일을요...

젊은 시절의 페르미나

젊은 시절의 플로렌티노 (분장이 좀...)



결국 그녀의 남편이 죽고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와 함께 하게 됩니다.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53년만에 잠자리도 같이하고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속삭이며 행복해 합니다.



50년을 넘게 한 여자를 사랑하며 기다린 남자... 아름다운 사랑같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날짜까지 세는 그의 모습은 살짝 스토커 같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이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도 가능한 걸까요?

이쯤에서 원작 소설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포스팅인데 영화 말고 다른 얘기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네요)
원작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이하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라틴아메리카 작가로 저 유명한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1982년 '백년동안의 고독' 바로 다음작품이 1985년에 출간된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마르케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환상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란 장르이죠. 환상 혹은 마법 그리고 현실... 공존할 수 없는 두 단어가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Jose Garcia Marquez) / 작가
출생 1928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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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전 세계 어느 곳이나 격변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5.18과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남미도 민주화와 쿠데타 혁명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하죠. 그 격변의 동시대를 살던 작가 마르케스는 리얼리즘이란 단어의 뜻처럼 현실성과 역사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회참여방식은 아니었던거죠. 어린시절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환상적인 이야기들의 영향을 받은 마르케스는 자신의 소설에 판타지적인 측면을 가미해 단순한 기록과 재현에서 끝내지 않고 미학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콜레라시대의 사랑' 또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 비상식적이고 모순으로 가득찬 현실 속에서 독자로 하여금 진실은 무엇인고 진정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동화는 아닐까요? (영화에서는 워낙에 사랑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원작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아 우리 낭만주의 얘기를 쭉 하고 있었죠?

그러고 보니 낭만주의 문학에 대해 뒤져 봤더니 그 '환상적 사실주의'란 말이 나오긴 합니다. 개성을 중시하고 질서를 벗어나 풍부한 상상력을 펼쳤던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환상적 사실주의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마르케스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순 없겠지만 아무튼 낭만주의 시대에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다고 하니 앞서 살펴봤던 드라큘라 같은 작품들도 그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현실이라는 가장을 하고 사랑이라는 환상을 얘기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습니다.

p.s. 50여년 간 한 여인을 기다려 온 플로렌티노 아리사. 하지만 그가 그렇다고 금욕생활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페르미나를 기다리는 동안 육체적으로 탐닉했던 여자들이 600여명이라고 하죠? 하나하나 숫자를 매겨나가고 기록하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모습이 진정한 사랑이라기 보단 집착에 가깝다고 느껴지면서도 살짝 부러워지는 건 왜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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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멸의 연인 - 베토벤, 낭만주의의 창시자

내 불멸의 연인이여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오직 그대와 결합하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입니다.
그대는 내 인생이며 전부라오
다시 만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해 주시오
영원히...


- 영화 '불멸의 연인' 중 베토벤의 편지 축약



베토벤이 죽은 후, 받는 이를 알 수 없는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됩니다. 그가 31살 무렵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에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베토벤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죠. 영화 이야기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편지는 실제로 지금도 베토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덧붙여 1994년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불멸의 연인'입니다.


본의아니게 게리올드만이 연속으로 등장하십니다. 배트맨을 돕기 훨씬 전 이 무렵의 게리올드만은 정말 강렬함 그 자체였죠~


불멸의 연인
감독 버나드 로즈 (1994 / 영국, 미국)
출연 게리 올드만, 조한나 테어 스티지, 예로엔 크라베, 크리스토퍼 풀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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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는 일종의 추리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친구 겸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제론 크라베)가 베토벤의 유언장에 적힌 무명의 상속자를 찾기 위한 조사 과정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입니다. 쉰들러는 그 '불멸의 연인'을 찾기 위해 베토벤의 과거 여인들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사람들은 괴팍했던 베토벤의 성품, 천재적인 음악성을 증언하면서 베토벤과의 뜨거웠던 사랑을 나눴노라고 증언하죠. 하지만 불멸의 연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마지막 장면 당시 저에겐 충격적이었던 반전과 함께 그가 진정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끝나게 됩니다.

이 영화는 픽션이 분명하지만 베토벤의 편지들과 그가 남긴 음악,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살펴보면 왠지 베토벤이 실제로 평생을 걸쳐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베토벤의 경우에는 그 사랑이... '증오'로 바뀌어 평생을 간 케이스죠. 제가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말인데 사랑이란 엄청난 에너지라서 그 사랑이 증오로 바뀌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서어서 사랑이 떠났음을 받아들이고 그 후에도 계속될 나의 삶에 충실해야겠죠. 물론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베토벤 님께서도 그러지 못했죠.


쿨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우린 베토벤이 하이든, 모짜르트와 함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모짜르트보다 후대의 작곡가로서 낭만주의의 경향을 좀 더 많이 보입니다. 앞에서 낭만주의가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인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했었죠? 모짜르트의 음악이 형식에 있어서 절제와 논리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베토벤의 음악은 좀 더 감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일부러 확연히 차이가 나는 곡들을 고르긴 했지만 이런 특징이 있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기교가 뛰어난 모짜르트 음악에 비해 베토벤의 음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짠~ 한게 있습니다. 스무살 어렸을 적 한밤중에 '월광'을 들으면서 가슴벅차하던 생각이 나네요~


이러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은 영화에도 묘사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쉰들러에게 음악의 역할이 뭐냐고 묻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맑게 한다는 쉰들러의 말에 베토벤은 음악은 작곡자의 감정과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하죠. 음악은 최면과 같다고도 하고요. 음악이란 작곡자의 감정을 나타내는 거라고 합니다. 바로 베토벤이 낭만주의에 영향을 미친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아우르는 작곡가 혹은 낭만주의의 창시자라고까지 평가되기도 합니다.

귀가 안들려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며 월광을 연주하시는 베토벤~



자, 음악얘기는 이쯤 하고 다시 영화로 돌아갈까요?


베토벤은 알려진대로 아주 괴팍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자주 묘사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를 결국 실연의 아픔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실제로 베토벤은 귀족이 아니었던 신분의 한계때문에 수차례 청혼을 하고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 열등감들이 그를 괴팍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정말 사랑의 아픔이 증오로 바뀐 나머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날을 세우며 괴팍한 성품으로 변해갔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그가 죽을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에 빠졌고 그때마다 나이나 신분 등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하니 평생 사랑에 매달리면서 살았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자신을 떠난 한 여자를 평생 증오했던, 아니 사랑했던 베토벤의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포스팅을 시작하며...


사랑은 영원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 사랑은 세상 그 누구의 사랑보다도 고결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은 흘러 사람은 떠나고 사랑은 변하고... 결코 영원한 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지금도 사랑을 떠나보내는 건 여전히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리고 늘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사랑이 내 삶의 끝까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고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의 책장을 덮지 못하고 눈물짓는 그들의 이야기를 참 동경했었습니다. 그들에 관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아마도 그들처럼 되길 바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난 왜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했었는지, 잔인한 현실을 알아버린 지금도 왜 그렇게 이별은 힘든 건지... 그들은 왜 그랬는지...

사랑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제 기억 속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그들에 관한 영화 몇 편을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1) 드라큘라 - 열정적 사랑의 배경, 낭만주의

1920년대 '노스페라투'를 시작으로 최근의 '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 영화는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내고 진화하면서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죠. 하지만 그 원조를 찾는다면 역시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일 것입니다. 브람 스토커가 1897년 소설로 첫 선을 보인 '드라큘라'는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며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영향을 끼쳤는데 1992년 개봉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는 원전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죠.

이미지를 구하다 보니 DVD 재킷이네요~ ㅎ


드라큘라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 / 미국)
출연 위노나 라이더, 게리 올드만,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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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명한 영화라서 다들 보셨으리라 생각하고 줄거리는 짧게만 올리겠습니다.

15세기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악명을 떨치던 트란실베니아(지금의 루마니아 지역)의 블라드 왕자(게리 올드만)는 적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타가 자살하자 신을 저주하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 불사의 존재가 됩니다.
400여년 후, 트란실베니아에 더이상 빨아먹을 피가 없어진 드라큘라(드라쿨은 용을 뜻한답니다. 용의 아들이란 뜻이라죠~)는 런던으로 이주해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엘리자베타의 현신인 미나(위노나 라이더)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부분이 영화에서 가미된 로맨스적 요소입니다.)


미나는 처음엔 이 이방인을 거부하지만 알 수 없는 그의 마력에 빠져들고 마침내 400여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다짐하게 되죠. 결국 미나는 자청해서 흡혈귀의 삶을 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헬싱 교수(안소니 홉킨스)등을 비롯한 드라큘라 퇴치대가 조직되고 트란실베니아까지 쫓아가 드라큘라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엔 미나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됩니다.


드라큘라가 최후를 맞는 순간 미나의 대사가 이렇습니다.
"Our love is stronger than death."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흡혈귀 영화에서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한 마디는 바로 미나의 이 마지막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런데 그런 강렬한 사랑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여기서 잠깐 역사공부를 하고 넘어갈까요?

드라큘라가 쓰여진 19세기 유럽은 공장 매연으로 런던 하늘이 맑을 날이 없었을 정도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고, 영화에도 나오듯이 초기 무성영화가 등장하는 등 대중문화가 서서히 생겨나던 시대였습니다. 학교다닐때 배웠던 걸 떠올려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했던 고전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가 그 절정을 누리고 있을 때였죠.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성이 훨씬 가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절대왕정과 가톨릭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블라드 왕자가 교회를 등지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다짐한 것처럼 사랑을 위해서라면 한쪽이 희생하는 불평등한 관계도 이 때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죠. 무엇엔가 나를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열정이 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사실에 희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상대에게 빠져드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은 이 시절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답니다.

도색소설 보는중, 낭만주의는 대중문학도 발달시켰다

이무렵 초기 무성영화도 생겨났다



비록 1897년 출간된 소설버전의 '드라큘라'에는 드라큘라와 미나의 로맨스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고 하니 이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그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상상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19세기 무렵 열정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유명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해 보죠. 18세기 작품인데 이 소설로 인해 짝사랑에 빠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가요~ 죽음으로밖에 잊을 수 없을만큼 사랑은 강렬한 감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낭만주의와 함께 열정적 사랑이 문학의 단골 소재가 되기 시작하는데, 이 열정이란 것이 바로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 마음 상태인 것입니다. 보통 열정에 눈이 먼 사람들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죠. 내일 어떤 결과가 닥칠지 예측하지도 못하고 과거를 돌이키지도 못하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4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까지도 멈추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열정'이란 거죠.

제 생각이지만 적어도 이 당시에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식상한 조언 따위 해주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낭만주의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소설 '드라큘라'. 400년이란 긴 시간을 오직 하나의 사랑을 위해 버텨온 한 가엾은 영혼의 이야기가 흡혈귀 전설로 포장되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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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기술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프랑코 라 세클라 (기파랑,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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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복도에 놓여있는 출판사의 홍보용 책들 중에 제목이 맘에 들어 집어온 책이었다.
전속시절이었으니 4년전이었나?
이제서야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 책이 있다. 몇 번이나 읽어보려고 책을 들지만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챕터원만 뒤적거리다가 마는 책.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사랑과 이별이란 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썩 와 닿지 않는 문체와 학문적인 용어들... 진도 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무려 4년이나~
아마도 이 책은 '연인들이 쿨하게 헤어지기 위한 실용지침서!' 같은 건 아니었나보다.

책에 집중하게 된 건 '열정'이란 단어에서부터였다.

열정에 눈이 먼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닥쳐올지, 예측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그것은 열정이 아니다.
...
열정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현재에서만 존재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있다.
열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시간은 그 흐름을 멈춘다.
...

- 이별의 기술, 38p

왜 이별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관계는 늘 안좋게 끝나는가.

열정과 광기. 사랑은 그렇게 이유없이 예측할 수 없이 시작된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강렬하게 시작된 것처럼 헤어지는 데에도 그만큼의 에너지와 임팩트가 필요하다. 마치 어떤 상태를 원래의 것으로 되돌리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자연과학의 법칙(엔트로피)과도 같다. 이별이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한 자연의 원리인 듯도 싶다.

이 책은 사랑이 끝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랑을 위해 나아가기 위해 사회 속에 이른바 출문(出門)의식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에서 이별이 죽음과도 같으며 그를 위해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던 게 떠오르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에 사람들을 불러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슬픔을 정화시키는 것처럼 남녀간의 이별에도 뭔가 사회적인 과정과 의식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상세보기



다시 돌아가서,

이 책은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더 흥미로운 부분은 인류학적인 과정에서 사랑과 결혼에 대해 고찰한 부분이다. 18,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열정적인 사랑이 우리의 가치관에 자리잡기 시작한 과정부터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가치'와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회적이며 냉정을 요구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양립하고 있는 모순적인 행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사랑과 결혼이 분리되어 있던 과거의 모습들과 20세기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결혼제도에 사랑을 강제로 결합시켰던 과정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개혁과 발전을 시도해왔던 현대문명이 왜 '사랑'이라는 엄청난 가치에 대해서는 과거 가톨릭교회로부터 시작된 결혼이라는 낡은 제도 아래 묻어두려고만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이다. 생각해 보니 사랑과 결혼이라는 그 엄격하고 잔인한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별은 분명히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의 한 부분이다.
이별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장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또한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와 여러가지 편견등으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사회분위기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

열정적이고 고결한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된다고도 말하는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들에게 '이별의 기술'은 또 한 번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고 있다.

p.s. 주위에선 결혼하라고 성화인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만 눈에 들어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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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이별의 기술  (2) 2009.05.09
  1. Favicon of http://biti.tistory.com BT_비티 2009.07.08 16:40 신고

    이별의 기술... 싱글들의 염장을 지르는 제목이네요...ㅋ
    언제부턴가 저는 연애를 시작할 때 어떻게 헤어질까를 염두에 두게 됩니다. 굳이 애정이 식어서도 아니고, 그냥 그게 자연스럽게 되더군요. 제 속의 열정이 사라진걸까요?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듯이, 끝이 있어야 또 다른 시작이 있겠지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7.09 01:39 신고

      제목이 그런 느낌인가요? 책 내용은 전혀 아니예요 ㅎ
      사랑의 끝을 준비할 순 있지만 계획하진 마세요~
      희망이 없는 사랑 또한 불행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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