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멋들어지는 T4의 플래쉬 포스터, 소리도 납니다 볼륨up~)




- 프리퀄의 재미


중학교 시절 T2(터미네이터2)가 개봉했을 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몰려갔었더랬습니다. 당시만 해도 헐리우드키드라고 자청할만큼 영화를 좋아는 했지만 사실상 극장엘 자주 가진 못했었는데 그러던 중 보게 된 T2는 그야말로 충격과 함께 어린시절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죠. 죽여도 죽여도 상처하나 없이 말끔하게 되살아나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던 액체금속 터미네이터 T-1000의 CG에 탄성을 금치못했고, 우리가 대학생이 될 때 쯤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에 두려워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놀드의 샷건 돌려 장전하기에 열광했었고, T-1000의 표정이나 뜀박질 같은 걸 흉내내곤 했었죠. 터미네이터 2는 그렇게 우리 삶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추억이 되어갔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어른이 되고 핵전쟁으로 세상이 망할수도 있다는 우려보단 그저 내일 주가가 어떻게 될 지, 세금을 어떻게 하면 덜 낼 지에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 지금, 그 시절의 터미네이터가 예전 그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 돌아오는 건 마치 오래된 친구들을 다시 만나 옛날 추억들을 떠들어대는 동창회와도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그 시작은 헐리우드의 소재고갈때문이었겠지만 스타워즈 이후 보편화 된 이른바 프리퀄(prequel)들은 새로운 이야기,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이렇게 관객들의 추억이란 감성까지 자극하는 훌륭한 마케팅으로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간간이 등장해 감질만 잔뜩나게했던 미래의 전투씬들... 존 코너는 어떻게 카일리스를 만났으며 어떻게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내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늘 궁금했던 팬들에게 T4:미래전쟁의 시작은 어렸을 적 친구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 때빼고 광내고 다시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는척하기 키워드 : 프리퀄이란?

어떤 작품의 후속편을 씨퀄(sequel)이라고 하는데, 스타워즈 에피소드1,2,3 이후로 원작의 스토리 이전의 내용을 다루는 작품들을 pre란 접두어를 붙여서 프리퀄(prequel)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외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중심이야기축에서 벗어난 스핀오프(spinoff)와는 차별화된다. 사전에 없는 걸로 봐서 정식용어라기보다는 이런 장르들이 유행하면서 만들어진 업자용어인 듯 하다. 대표작으로는 스타워즈 에피소드1~3, 배트맨 비긴즈, 한니발 라이징, X맨;울버린, 스타트랙;더비기닝 등이 있다.



- 지난 시리즈들과의 연관성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1984년 1편을 시작으로 이번 4편까지 장장 25년을 이어오게 되었는데 이번 T4는 18년전 1991년에 개봉한 T2의 연장선쪽에 있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2003년 개봉한 T3와 TV시리즈 '사라코너 연대기'가 가운데 껴 있기는 하지만(애니, 코믹스 등 기타 매체 제외), 왠지 터미네이터 시리즈 안에 넣어주기 싫은 건 왜일까요?

지금 보면 살짝 촌스러운 1편과

지금봐도 전혀 어색함 없는 2편



일단 1편과 2편은 명실상부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년이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일단 터미네이터의 아버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이야기와 스타일을 완성시켜놓았고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의 출연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정통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의 변화된 설정 또한 1,2편을 이어주는 중요한 중심축이 됩니다. 1편에서 청순발랄 아가씨였던 사라코너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 무시무시한 여전사로 거듭났다거나 2편에서 아놀드가 예상을 깨고 우리편이 되어 인간을 돕는 아이러니한 설정은 1편과 2편을 묶어서 생각해야만 느낄 수 있는 재미일 겁니다. (정말이지 2편을 극장에서 보면서 존코너와 터미네이터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장면의 반전은 얼마나 충격이었던지요~ ㅎ)

그런데 10여년이 지나 개봉한 3편은 글쎄다... 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손을 놓은 T3는 아놀드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할아버지가 다 된 아놀드의 근육은 분장인 게 확실해보이고 업그레이드 된 여자 터미네이터가 새로워 보이긴 했지만 너무나 많은 기능을 갖춘 그녀의 모습은 변함없이 구식인 아놀드의 모습에 상대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만 했습니다. 캐릭터 또한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10여년동안을 숨어만 살아서 그랬나요? 에드워드 펄롱의 그 반항아적 눈빛은 어디로 가고 어른이 된 존 코너 '닉 스탈'은 여자친구 쫓아다니며 시종일관 찌질한 면모만 보입니다. 에드워드 펄롱이 자라서 크리스찬 베일이 된다는 건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닉 스탈이 15년 후 절대로 크리스찬 베일이 될 것으로는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더군다나 뒤이어 개봉한 신시티에서의 닉스탈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휴~ ㅜㅜ)

닉 스탈! 할 줄 아는 게 뭐니?



게다가 12년이란 간극이 너무 부담스러웠나요? 새로 메가폰을 잡은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은 터미네이터 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나치게 많은 팬서비스 장면을 끼워넣어 작품을 코미디로 만들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지나치게 선글라스에 집착한다거나 난데없이 전편의 정신과 의사가 나타나 예전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장면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정신과 의사, 아놀드와 함께 3편에 모두 출연하는 유일한 배우입니다.)

전체 시리즈 상에서 3편의 의미라면 2편에서 막은줄 알았던 심판의 날이 다시 이루어진다는 정도? (이것도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시간여행 설정은 모든 사건들을 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스카이넷과 핵전쟁이 있어야만 기계와의 전쟁이 있고 그래야 터미네이터와 카일리스를 과거로 보내 존코너가 태어날 수 있는데 핵전쟁을 막게되면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어지지요. 그럼 존 코너도 없는겁니다. 그리고 결국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냈기 때문에 그 기술력으로 스카이넷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니 모든 것은 정해져 있는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운명이란 건 없고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영화의 주제는 이 시간여행이란 설정때문에 오히려 모순에 빠집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더 깊게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ㅎ)
 
아 참, TV시리즈 '사라코너 연대기'가 있는데 패스하기로 하겠습니다. 2편과 3편의 사이에 있는 내용이라는데 스토리상 큰 연결고리가 되는 것 같지 않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사라코너 연대기' 1편을 살짝 보고 결코 간지가 안나는 터미네이터들의 모습에 실망한 저는 이 시리즈는 안봐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터미네이터 설정의 한계라고나 할까요 터미네이터 앞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들은 계속 도망다닐 수밖에 없고, 그들을 도와주는 여자 터미네이터의 설정도 낯설지 않고 그렇다면 승부는 액션인데 TV드라마다 보니 액션도 한계가 있고 사라코너는 존코너의 엄마라기보다는 누나같기만 하고... 여러가지 이유에서 패스합니다.


크리스찬 베일, 다크나이트와 조금만 기간을 더 두었더라면...



여차저차해서 T4는 1,2편 특히 2편을 많이 떠오르게 합니다. 오마주라고 볼 수 있는 장면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마커스와 카일이 하베스터를 따돌리고 도망치던 트럭과 모터터미네이터의 추격전은 영락없이 2편의 트럭/오토바이 추격씬을 연상시키고 맙니다. 다만 쫓고 쫓기는 입장이 바뀌었을 뿐이죠.

오마주의 압권은 스카이넷에서의 용광로 씬입니다. 스카이넷에 침투한 존 코너는 이제 막 만들어진 T-800을 만나서 쫓기게 되는데 용광로의 쇳물을 덮어쓰고도 다시 살아나는 장면, 그리고 급냉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T-800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합니다. 오마주임이 분명해지는 장면이면서 올드팬이라면 전율을 일으킬만한 장면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변조해 존을 유인하는 장면 또한 2편의 팬이라면 금방 함정임을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게다가 아놀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제품 T-800은 비록 CG라고는 하지만 1984년의 그 때 그모습 그대로 나타나 관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090525 수정 ->) 1편과의 연결고리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 못하실 지 모르지만 1편에서 잠깐 비쳤던 미래의 존코너는 얼굴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처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이 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밖의 연결고리들을 몇가지 살펴볼까요?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편 오프닝에서 잠깐 얼굴을 비쳤던 미래의 존코너는 얼굴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처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이 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편과의 연결고리도 있습니다. 카일은 마커스에게서 끈을 사용해 총을 팔에 고정시키는 법을 배우죠. 1편에서 카일이 과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써먹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존 코너가 늘상 새라가 남겨놓은 녹음테잎을 듣는데요, 1편부터 시작된 녹음이었습니다. (-> 수정끝)


뚜둥뚱뚜둥~ 신제품 T-800 나왔어요~



- 메세지

단순히 유사한 장면들의 나열에 그쳤다면 T4는 팬들이나 좋아할 그저그런 속편으로 끝났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T4는 식상하지만서도 고상한 메세지를 마커스 라이트라는 새로운 터미네이터를 등장시켜 세련되게 표현해 냅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라는 설정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잇는 모티브이자 'A.I.'나 '바이센테니얼 맨' 같은 여타 로봇류 SF물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를 통해 우리는 얼마낭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지 돌이켜 보자는 거죠. 역시나 T4도 이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마커스라이트는 시종일관 인간을 돕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스카이넷에 잡혀가는 카일을 구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하고, 블레어 중위를 구하기 위해서 불길과 포화 속에 몸을 던집니다. 또 몇 번이나 존 코너의 목숨을 구해주고 마침내는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하죠.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주인공인 존 코너보다 마커스가 더 멋져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고뇌하면서 약자란 약자는 다 도와주고 비장하게 희생하는 마커스의 모습은 태어날 때부터 인류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존 코너의 그것보다 훨씬 더 숭고해 보입니다.


그래 니들 짱 먹어라~


이번 봄 시즌은 유난히 SF 프리퀄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엑스맨;울버린'을 비롯해 '스타트랙;더비기닝'과 'T4;미래전쟁의 시작'까지 프리퀄의 향연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인데요. 과연 우리 미래는 어느쪽에 가까울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과학문명이 인간을 위해 계속 발전하고 사회문화적인 가치들도 이상적으로 정착한 유토피아적 세계관의 스타트랙과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곳에 숨어살며 기계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터미네이터. 보다 가까운 미래여서인지는 모르지만 터미네이터쪽이 현실에 더 가까워보이는 건 왜일까요?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려보기에 우리 현실이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은걸까요? 안타까운 소식들만 들려오고 참 씁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 존 코너의 내레이션처럼 미래는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어보렵니다.

p.s.
참, 그러고 보니 T4를 보면서 이거 '터미네이터'가 아니라 '매트릭스' 프리퀄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인간들이 기계들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지도자를 기다린다는 설정은 존 코너보다는 네오를 떠올리게 되고... 인간을 납치해 생체조직을 복제하는 스카이넷이 한 백년쯤 지나면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사이버상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매트릭스'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이드로봇이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센티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T5에서는 모피어스의 어린시절이라도 등장하는 거 아닐까요? ㅎㅎ

p.s.2
극장을 나서면서 마커스가 스카이넷과 무선으로 연결되어 데이타를 탐색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어느 관객의 지적. " 그건 합체가 아니라 동기화지~ " ㅎㅎ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p.s.3

090525 내용이 수정, 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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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면성인 2009.05.25 02:09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저는 그래도 꽤 만족한 영화예요..^^
    워낙 3편에서 망쳐놓은 이야기전개때문에 4는 어떻게 나올까 했는데
    맥지감독이 아예 3편을 제껴버린듯한 전개때문에 한시름 덜었다고 해야 할까요?

    스핀오프격인 TSCC은, 제가 2시즌까지 다 보았는데요.
    확실히 액션면에도 떨어지고, T-800의 포스도 떨어지긴 하지만 스토리가 굉장히 신선하더군요.
    시즌1 초반에 사라 코너에게 집중된 스토리 전개를 시즌2에서 버렸더군요.
    시즌이 가면서 더욱 재밌어 진달까요..? 드라마라서 여러가지 디테일한 에피소드들도 있구요.

    T시리즈의 진정한 팬이시라면, 진득히 다 봐주시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요.
    ((사실 저도 시즌 초반엔 힘들었거든요...하하))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

  2. 지나가다 2009.05.25 22:25 신고

    존코너 얼굴의 상처는 2편에서 나오지 않나요 ? 2편 오프닝에 존코너의 얼굴이 처음 나오는것으로 기억하는데/./.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25 22:37 신고

      앗.. 그런가요? 제 기억엔 1편이었는데 확인해봐야겠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26 03:14 신고

      확인해 보니 2편이군요~ 내용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3. 니어 2009.05.29 10:42 신고

    매트릭스 생각을 저만 한게 아녔군요....-_-ㅋ 저도 이거 이렇게 지나가다가 나중에 인간이 하늘을 불태우고 스카이넷이 사람을 에너지원으로 쓰고하면서 진행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29 18:43 신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다 비슷한걸까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할텐데요~ ㅎ

  4. 래군이 2009.06.02 00:13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1~3편을 제대로 보질 못해서 이번에 4편을 봤는데 이해가 잘 되질 않았거든요. 물론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만... 덕분에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아아아아~ 1~3편도 제대로 함 보고싶군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6.02 02:13 신고

      저도 이거 쓰면서 1-3편 다 훑었네요~
      연결고리 찾는 재미가 쏠쏠해요 한번 찾아서 보세요~ ^^

  5. 제라툴 2009.06.05 15:01 신고

    글 잘 보았습니다~
    T4가 매트릭스의 프리퀄이라는 생각은 재미있네요~. 그렇게 생각될만도 하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매트릭스의 프리퀄(?)은 이미 따로 있죠.. 애니매트릭스에 '세컨드 르네상스' 1,2편에 어떻게 매트릭스 시대가 도래했는지 나오죠. 혹시나 정말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봐-_- 노파심에 적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6.05 21:22 신고

      아~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요? ㅎㅎ

      애니매트릭스는 잘 알죠~

      그냥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이 비슷해서요~



드라큘라-드라큘라

불멸의연인-베토벤

콜레라시대의사랑-플로렌티노


이 포스팅을 생각했던 때가 지난 2월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보고나서였으니 완성하는 데 거의 석달이나 걸린 셈이네요. 물론 그 때는 구체적인 방향도 없었고 블로그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습니다. 그저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었고 더 알고 싶었고 어쩌다보니 역사나 문학에 대한 공부까지 하게 되었네요. 이번 연작 포스팅은 참으로 중구난방이고 허접하기 그지 없었지만 제 자신으로서는 나름대로 치유의 과정과도 같은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을 겪고 사랑이란 것도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사랑은 참 힘이 듭니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끝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마 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나마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큘라'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그들처럼 사랑이 영원하길 바랬던 모습도,
'세렌디피티'의 그들처럼 운명의 장난에 내던져진 모습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나 '냉정과 열정 사이'의 그들처럼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모습도
모두 나를 비롯한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었습니다.

매디슨카운티의다리-로버트/프란체스카

세렌디피티-조나단/새라


우린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이성적, 합리적으로는 답이 뻔히 나오는데 왜 우리는 매번 과거에 얽매여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그 해답을 찾아야 아픔도 치유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런 작품들에는 낭만주의라는 배경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열정적 사랑이란 가치가 어쩌면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판타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 열정적 사랑이란 환상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의 후예들은 아닐까요?

그런데, 판타지라는 걸 깨닫고 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건 왜일까요? 포스팅을 연재하면서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좁은 안목과 짧은 지식에서 나온 이런 논리로 쿨한 마음을 먹게 되는 건 무리인가 봅니다. ㅎ~

이터널선샤인 - 조엘/클레멘타인

냉정과열정사이 - 아오이/준세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정답이라고 여겼던 것이 내일이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란 제 블로그 제목처럼 우린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 방황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정착하고도 싶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어찌나 불완전한지요. 우린 끊임없이 갈 길을 몰라 힘들어 합니다.

어쩌면 내일도 오늘처럼 힘이 들겠지요. 어쩌면 우린 죽을 때까지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겠지요. 하지만 내일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또다시 힘들어지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을 스테파네트에게 바칩니다.)



p.s. 포스팅에 참고한 문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상세보기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상세보기
이별의 기술 상세보기
 기타 '낭만주의' 관련 네이버 지식인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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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ate.textcube.com 케이트 2009.06.10 13:44 신고

    이너털 선샤인 보고 많은 걸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
    역시, 상처받고 힘들 걸 알면서도 또 사랑에 퐁당 빠지겠죠~?

  2. Favicon of http://kate.textcube.com 케이트 2009.06.10 15:58 신고

    사랑은 상처받는 걸 허락하는 거라 ㅎㅎ 음..
    사랑의 치유법은 더욱 사랑하는것 밖에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ㅎ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6.29 03:19 신고

      댓글을 늦게 봤네요... ㅎ
      사랑하시길 바래요~ ^^



(7) 이터널 선샤인 - 그래도 사랑은 계속된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포스팅 할까 말까 무척 망설였습니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영화들이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끝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사랑이 시간이 아닌 기억을 넘어선다는 다소 다른 설정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현실에서는 절대 경험해볼 수 없는 설정의 허구성때문에 고민을 하긴 했지만 고민끝에 연작 포스팅의 마지막 작품으로 정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에 있습니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남는다... 고 말하는 '이터널 선샤인'입니다.

제목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알렉산더 포프의 격언의 인용이다


이터널 선샤인
감독 미셸 공드리 (2004 / 미국)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일라이저 우드
상세보기

출근길에 충동적으로 회사 땡땡이치고 몬타우크 해변으로 떠나는 조엘(짐 캐리)은 우연히 푸른머리의 발랄한 아가씨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게 되고 금새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며칠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진 연인들이었습니다. 둘의 관계가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 사에 의뢰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던 것인데요...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에 충격을 받은 조엘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워가면서 둘의 지난 사랑의 과정을 되짚어가면서 영화는 진행됩니다.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작과 끔찍했던 사랑의 종말, 그 모든 기억들이 조엘의 눈앞에서 하나둘씩 사라져가자 조엘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 기억의 삭제과정에서 도망치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기술자들의 밤샘작업(?) 끝에 끝내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그들은 또다시 그들의 추억의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 거였습니다. 결국 둘이 연인사이였고 입에담지 못할 말들로 상처를 주고 서로를 지우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과 클레멘타인...

정말 사랑했었는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건지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건지 혼란스럽기만 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예전에 어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남자는 마침내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자신을 남편이라 부르는 아내와 아기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겉돌기만 하죠. 오래전이라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게 현실이구나 싶었더랬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감정일까요? 열정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감정인걸까요? 우리는 보통 사랑이니 분노니 하는 희로애락의 감정들과 열정이니 용기니 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할 때 마치 가슴이나 심장에서 그것들이 생겨나는 양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이성과 감성을 통제할 뇌가 위치하는 머리는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력에나 쓰이는 걸로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랑이란 감정이 뇌 속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의한 일종의 환각작용이란 걸 숱하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착각인 셈이죠. ('매트릭스'를 떠올려 봅시다.)
결국,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단순한 기록들과 함께 그 기록들과 함께 매칭되어 저장되어 있던 느낌과 감정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과학적으론 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나를

기억해요...


아, 물론 오늘 포스팅을 이렇게 삭막한 결론으로 끝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들은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을만큼 힘든 사랑을 겪고 있습니다. 쿨하게 사랑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이전 포스팅의 주인공들처럼 조엘과 클레멘타인 역시 사랑에 얽매이는군요.
 
'이별의 기술'이란 책에 보면 사랑은 예측하지 못하는 강렬한 광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헤어질 때에도 정상적일 수 없다고 얘기 합니다. 때문에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죠.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또다른 하나를 만들어내는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사랑이 끝날 때에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임팩트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마치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이론과 비슷하게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둘은 다시 만나고 어제까지 사랑했던 그녀의 앞에서, 헤어진 이유를 알고도 서로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클레멘타인 : 난 완벽하지 않아.
조엘 : 너랑 헤어져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
클레멘타인 : 찾게 될거야. 넌 나에 대해서 다시 싫증날거고 답답함을 느끼게 될거야.
조엘 : ... 괜찮아 (OK)
클레멘타인 : ... 괜찮다고? 그래? (OK?) 그래~(OK~)

(뒷부분의 '오케이'는 해석이 참 힘드네요. 원작의 느낌으로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OK~

OK?


현실에서 이런 경우가 있다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정말 다시 사랑하게 되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기억상실증의 남자처럼 서로 전혀 못알아보고 그냥 그렇게 스쳐지나갔을지 모르죠. 그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감독이 만들어낸 로맨틱한 설정에 눈물지으며 '그렇구나~ 맞아 사랑이란 역시 그런거야~'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 영화도 역시 낭만주의가 만들어낸 조금 색다른 버전의 판타지인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중요한 한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언젠가 끝이 날 걸 알면서도 설령 그 끝이 끔찍할지라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죠.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행복해하면서도 아파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다시는 다치지 않으려고 새로운 사랑을 겁내는 건 영화 속 주인공들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사랑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는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요? 뜨겁고 열정적이기보다는 쿨함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지만 불확실성이 팽배한 나머지 불안정으로 인한 불안함이 사회정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것도 불확실한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확실한 단 하나는 어쩌면 '사랑'이란 게 아닐까요? 전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이 사랑이란 감정이 어쩌면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 삭막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구원해 줄 수 있진 않을까요? 때문에 비록 그 사랑이란 것이 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신화이고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난 화학작용으로 인한 착각일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해야하고 우리 마음 속 열정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어쩌면 우린 라쿠나 사의 고객들처럼 어제까지의 기억을 다 삭제당하고 사랑을 잊어버리도록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유도 없이 왠지 계속 눈길이 가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한 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혹시 당신을 사랑했던가요?' 라구요...

마지막으로 이터널 선샤인에 삽입되었던 Beck의 노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를 띄우면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까지 '지난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그 대단원의 마지막 작품 '이터널 선샤인'이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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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엘 2009.05.21 14:23 신고

    아...이 영화. 정말 별 생각없이 봤다가 로맨스 영화 중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돌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짐 캐리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맨날 코메디만 봐서 몰랐는데...
    게다가 참 멋지고 잘 생겼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랑과 기억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잊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했던 영화입니다.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21 19:38 신고

      짐 캐리는 진지한 거 할 때가 더 멋진 듯 해요~

  2. nubia 2009.05.30 11:47 신고

    작년에 한동안 영화만 보고 살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 때 노트북과 이터널 선샤인 등 참 많은 좋은 영화들을 봤지요.
    올해도 많이 보고 참 다양한 장르의 영화 리뷰를 많이 써기도 했는데
    요즘 건강문제로 잠시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진지하고 따뜻한 시각의 리뷰들이 전 참 좋네요.
    제가 글 쓰는 스타일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친근감도 들구요^^

    가끔씩 들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 공유할 수 있었음 싶네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34 신고

      좋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순수한 영화리뷰라기보단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식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스스로도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저도 블로그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 ^^



(6) 냉정과 열정 사이 - 낭만, 현실과의 갈등을 겪다

오늘은 영화음악이 워낙에 아름다웠던 작품을 다룰테니 배경음악을 깔고 시작해 볼까요?


만나야 할 사람들은 정말 언젠간 만나게 되는 걸까요? 운명의 장난과 필연적 상황들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더라도 서로의 맘 속에 간직하고만 있으면 언젠간 영화처럼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시 만나게 될때까지 우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처음 접한 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음악을 먼저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도 유명했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질 못했고 라디오나 광고 배경음악으로 나오던 'The Whole Nine Yards'나 'What a Coincidence' 같은 곡들이 나중에 영화음악이란 걸 알고 영화를 찾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들' 연작 포스팅 벌써 여섯번째네요 이제 끝이 보입니다. 이번엔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참으로 많이 써먹었던 요시마타 료의 음악들과 진혜림의 미소와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기억되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스터 속 남자는 어째 오다기리 조에 가까운 듯 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감독 나카에 이사무 (2001 / 일본)
출연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시노하라 료코
상세보기

1991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연인 준세(다케노우치 유타카) 아오이(진혜림)은 어떤 오해로 인해 안타깝게도 헤어지게 됩니다. 1994년, 둘은 이태리에서 재회하지만 준세는 과거를 잊고 잘 지낸다는 아오이의 말에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이 복원을 맡은 그림이 훼손당하는 사건까지 겪고나자 모든 것들을 잊고자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둘이 헤어진 게 오해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준세는 아오이에게 긴 편지를 보내게 되죠.
아오이는 부유한 사업가인 마브(마이클 웡)와 밀라노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준세에 대한 마음을 지우기 힘듭니다. 마브는 마음을 열지 않는 아오이에게 지쳐가고 둘의 관계는 점점 나빠집니다.
2001년, 준세는 마침내 복원사 일을 다시 하기 위해 피렌체로 돌아오고 두오모 성당에서 함께 하기로 했던 10년전 약속을 기억하고 성당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된 두사람... 두오모 성당에서의 만남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아주 낭만적이고 유쾌하게 다시 만나게 되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과 끝내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다면 우리의 준세와 아오이는 그 중간쯤 되는 곳에서 그리워하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고 갈등하다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그리워 하면서도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났을 때 준세는 아오이에게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는 게 나았다고 말합니다. 아오이는 다시 만나서 좋았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잘지내라며 돌아서고 말죠. 준세와 아오이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약하고 혼란스런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을 담아두고도 냉정한 척 애쓰려고도 하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다가도 어느 순간 냉정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도 다르지 않겠죠?

10년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두오모 성당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준세와 아오이. 그 오랜 세월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던 두사람인데 둘을 함께 하지 못하게 했던 건 뭘까요? 그리고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한 건 또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영화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 같지 않은데 원작 소설에서는 준세의 열정과 아오이의 냉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요? 영화만을 접한 저로서는 냉정과 열정은 준세와 아오이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원하는,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열정. 그리고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는, 나는 잘 지낸다고 말하는 냉정함 사이에서 그들은 10년이란 세월을 돌고 돌아온 건 아닐까요?


포스팅을 이어오면서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길 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 학문적으로도 살펴봤고 영화속 이야기를 통해 여러 케이스를 살펴보았는데요. 우리 삶은 결국 그 깊이를 모를 불확실함과 그 안에서의 갈등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운명과 현실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말이죠... 그 안에서 어느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약한 우리들은 끝없이 갈등하게 되고 마침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 블로그 이름도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길을 잃다'군요. 저 또한 그 원죄와 같은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훗~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우리는 정답을 모릅니다.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라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그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도 배웁니다. 불꽃처럼 뜨거운 인생을 살고 싶지만 그 불꽃이 나와 내 주변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해답은 나이를 먹는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물어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정답을 찾기 위해서 혼자서 노력하고 갈등하고 그러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런게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준세는 고미술품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오래되고 시간이 흘러 그 가치가 퇴색한 작품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죠. 치이고리란 작가의 대작 한편을 복원하면서 준세는 자신의 감정도 일으켜 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따지고보면 그 복원이란 작업이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작업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요. 지난 포스팅들에서 열정이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에너지라고 했었는데요. 글쎄요, 과거에 대한 집착도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피렌체에서 아오이를 떠나보낸 준세는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뒤돌아 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요. 준세는 냉정을 조금은 배운 것 같고 아오이도 자신의 열정을 충분히 끌어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준세와 아오이는 밀라노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 드디어 함께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둘의 앞 날은 어제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거죠. 좀 더 자유로워지고 성숙해보이는 준세와 아오이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당신은 냉정인가요 열정인가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나요?



연인들에게 지키지도 못 할 10년 후 약속 꼭 하게 만들었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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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ubia 2009.05.30 11:45 신고

    제 블로그에 엮인 글을 보고 이제야 방문을 했네요.
    참 많이 늦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다른 이의 감상평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또 흥미롭고 기쁜 일이네요.

    글 잘 읽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음악과 피렌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
    다시 한 번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5.31 21:38 신고

      저도 포스팅 하느라 오랜만에 봤는데 좋더라구요 ^^


(5)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낭만주의의 후예들


지난 포스팅에서는 영화 '세렌디피티'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운명인지 선택인지 모르지만 주인공 남녀는 서로를 찾게 되고 결국 다시 만나게 되죠. 그런데 궁금한 게 한가지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후 잘 살았을까요? 사랑에 관한 포스팅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랑은 결국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라는 거죠.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사랑 그 엄청난 간극 속에 놓여있는 우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뒤를 돌아봐선 안되죠.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버리고 이상과 열정을 선택합니다. 알콩달콩한 마지막 장면을 보아하니 다행히 행복하게 잘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선 과연 어떨까요...? 운명적인 사랑 앞에서 현실을 선택하는 이들의 이야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입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 / 미국)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메릴 스트립, 애니 콜리, 빅터 슬레잭
상세보기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과외란 걸 첨 받아보았는데 국어교육과에 다니던 어여쁜 그 선생님께 전 '매디슨카운티의다리'란 책을 선물해 드렸었죠. (선생님은 제게 '뉴트롤스' 테잎을 사 주셨는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답니다 ㅎ)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그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어린 마음에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내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죠.

줄거리는 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시골마을에서 평범한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사는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에게 어느 날 낯선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타나고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고 나흘이란 짧은 시간동안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죠. 마지막 밤, 로버트는 함께 떠나자고 제안을 하고 프란체스카도 고민끝에 짐까지 꾸리지만 그녀에겐 버릴 수 없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프란체스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현실을 선택하고 로버트를 떠나보냅니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야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확실한 감정... 그런 감정 앞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들처럼 그 감정을 따라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뜨거운 열정은 접어두고 내 앞에 놓인 현실에 눈을 돌려 그저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프란체스카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을 하지요. '로버트와 함께 떠났어도 우리 감정은 변할 수 있고 남편과의 사랑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께 떠났다면... 그 사랑의 아름다움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프란체스카는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며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진 않았을 거란 걸 알게 됩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죽는 순간까지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합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생일이 되면 로버트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찾아가죠.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목걸이를 늘 목에 걸고 다니며 그녀를 위한 사진첩을 발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의 플로렌티노처럼 맹목적이거나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처럼 지독한 것 같진 같습니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그렇게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도 그의 생각을 안하고 살아간 적이 없었단다.
우리 둘은 하나처럼 가깝게 느끼며 살았지.
그가 아니었다면
난 농장에 계속 남을 수 없었을 거야.


그렇습니다. 그들이 열정을 간직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전 포스팅의 주인공들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잠깐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지만 그 소중했던 사랑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버텨내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버려진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프란체스카는 해방될 수 있었을까요? 로버트는 그런 프란체스카를 언제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로버트의 방랑자로서의 삶을 프란체스카는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꿈과 이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악몽이 시작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꿈으로만 남겨 둘 때 아름다울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아름다워지는 것처럼요.
 
낭만주의 시절, 열정적 사랑의 개념이 생겨나고 불행과 체념이 아름다운 사랑의 기본조건으로 여겨지던 당시, 스탕달은 보바리 부인이란 소설 등을 통해 열정적인 사랑을 그리면서도 낭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곤 했습니다. 스탕달은 남녀간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런 스탕달이 보기에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나흘간의 사랑과 열정은 어쩌면 위험한 전염병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보니 우리 낭만주의의 후예들이 사랑이 더욱 힘들어진 지금의 잔인한 현실 속에서 참 잘 버텨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구요.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통속적인 불륜스토리이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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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달콤 2009.06.08 13:01 신고

    그 뉴트롤스가 올 9월에 내한한다네요.

    서울 아트록 페스티벌에서 http://cafe.daum.net/sarf


(4) 세렌디피티 - 낭만주의의 신봉자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보면 주인공 '나'는 연인 클로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우연한 상황을 확률로 설명하며 낭만적 운명론을 펼칩니다.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단 한가지 일이 일어난 것을 우주적으로 해석하며 자신들의 만남이 그 어떤 만남들보다 특별하고 유니크 하다고 여기려고 하죠. 이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것... 우린 그런 걸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린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운명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던가 그녀는 나의 운명이라던가 하고 말이죠.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영화는 그렇게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렌디피티'입니다.

serendipity ; 운 좋은 뜻밖의 사건, 발견


세렌디피티
감독 피터 첼섬 (2001 / 미국)
출연 존 쿠색, 케이트 베킨세일, 몰리 섀넌, 제레미 피븐
상세보기


지난 포스팅에서는 50여년간 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다루었더랬습니다. 영화는 개봉을 안했으니 못보신 분들이 많을텐데 왠지 그 영화나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면 바로 이 영화 '세렌디피티'를 보신 건 아닌가요?

크리스마스 즈음 백화점 장갑매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나단(존 쿠삭)과 새라(케이트 베킨세일)는 왠지 모를 이끌림에 커피도 마시고 스케이트도 타고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둘은 각자 애인도 있죠. 아무튼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세상 모든 일은 운명에 달려있다고 믿는 새라는 제안을 하나 합니다. 5달러 지폐와 길거리에서 파는 헌 책 한 권에 서로의 연락처와 이름을 적은 후 나중에 그걸 다시 손에 넣게 되어 연락처를 알게 되면 그 때 다시 만나자고요. 새라와 달리 현실주의자인 조나단은 마지못해 그 제안에 따르게 되고 둘은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이때, 새라의 연락처를 적은 책이 바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미국에서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쏟아지는 연애소설의 대표작품이라는데 이 영화에선 두 주인공의 운명적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이 책을 구하려고 서점의 외국서적코너를 뒤졌지만 없었다~



시간은 흘러 몇 년이 지납니다. 조나단은 결혼을 며칠 앞두고 있고 새라도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지만 둘 다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조나단은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새라도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게 되죠. 그런 중에 둘은 각자 이상한 징조(?)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새라'란 이름을 계속 접한다거나 둘이 얘기했던 오래된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결국 조나단과 새라는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서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서로 스쳐지나가기를 수차례 반복한 후 결국 다시 만나게 됩니다. 마치 운명처럼요... 그리고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합니다. happily ever after~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죠?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신의 계시인 듯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난 지난 사랑의 소중한 추억들... 우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저 단순한 우연을 확대해석 하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어떤 절대자가 운명의 책에 씌어진대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보통 운명을 얘기할 때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운명을 피해 달아난 오이디푸스가 결국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인간은 자기 앞에 놓인 거대한 운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과연 그런건가요? 미미한 우주의 티끌같은 우리들은 운명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까요?

자, 이제 운명이니 영원이니 하는 단어들을 빼고 영화를 한 번 보도록 하죠. 조나단과 새라는 각자 운명의 이끌림 이전에 현재의 사랑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조나단은 결혼을 앞두고 사랑이 식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전히 여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해야하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새라는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아 행복해 하지만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점점 거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현실에서 열정이 식어갈 때 자연스럽게 몇년 전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립니다. 뭔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던, 일상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을진 몰라도 온 우주가 그 시간 둘의 만남을 위해 존재해 왔던 것 같은 그런 느낌... 다시 말하면 잠깐이나마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 같은 그 때를 말입니다.

사람들은 평범하기를 싫어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의 삶은 고유하고 특별하다고 여기고 싶어하죠. 그런 점에서 운명이나 우연은 그렇게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모티브에서 출발한 이 영화 '세렌디피티'는 현실보다는 운명과 우연이라는 낭만적인 가치에 더 비중을 두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인연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들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만나고 싶어서 못견디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어쩌면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판타지는 아닐까요?

시크릿의 이론(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주가 움직이고 우리가 집중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으로 이끌려 온다는 내용)은 운명이 아닌 선택이라는 가설에 근거를 부여해 줍니다. 시크릿이란 책이 한낱 자기개발서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여기 나온 이론은 과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인용하곤 합니다만) 이에 따르면 조나단과 새라는 결국 운명이 아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게 되고 결국 그 인연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오게 된다고도 볼 수 있는 거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란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죠.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포스팅들에서 열정에 대해 얘기했던 거 기억나시나요? 열정은 현재에만 집중하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라서 우리가 열정에 사로잡힐 때 시간은 그 흐름을 멈춘다고요. 조나단과 새라에게 그 짧은 만남은 강렬한 열정이었고 몇 년의 시간쯤은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시간을 초월한 운명이 아니라 열정에 사로잡힌 두 사람의 선택이었던 거죠.

사랑이 영원할 것인지 아닌지도 운명이 아닌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함으로써 나 자신이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영원하길 바라는 낭만적인 사랑과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가는 현실적인 사랑... 여러분은 어느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영화 '세렌디피티'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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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콜레라 시대의 사랑 -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란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영화 '세렌디피티'에서였습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한 여자와 현실을 믿는 한 남자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영화죠. 그 영화에서 여자는 거리에서 산 책 안쪽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그 책을 다시 팔아버립니다. 운명적으로 그 책을 남자가 다시 얻게 되면 그때 만나자 하고 말이죠~ 둘의 만남에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던 그 책이 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마이크 뉴웰 감독은 '네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찍었습니다.


 
콜레라의 사랑
감독 마이크 뉴웰 (2007 / 미국)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지오바나 메조기오르노, 벤자민 브렛,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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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우리나라엔 아직 개봉을 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로 읽으신분들이 계신지 안계신지 모르지만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죠.

역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그의 이름이죠. (하비에르 바르뎀이 10대에서 80대까지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영화보면서 벤자민 버튼이 생각났는데 분장은 벤자민 버튼에 훨씬 밀리더군요 ㅎ) 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는 부유한 상인의 딸인 페르미나(지오바나 메조지오르노)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뜨거운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환경의 차이로 반대에 부딪히고 마침내 페르미나는 의사인 우르비노(벤자민 브랫)와 결혼을 하게 되죠. 플로렌티노는 사랑하는 페르미나를 잃고 절망하지만 곧 새로운 희망을 찾고 인생의 결심을 하게 됩니다. 평생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말이죠. 그녀의 결혼생활을 멀리서 지켜보며 평생을 기다립니다. 무려 51년 9개월 하고도 4일을요...

젊은 시절의 페르미나

젊은 시절의 플로렌티노 (분장이 좀...)



결국 그녀의 남편이 죽고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와 함께 하게 됩니다.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53년만에 잠자리도 같이하고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속삭이며 행복해 합니다.



50년을 넘게 한 여자를 사랑하며 기다린 남자... 아름다운 사랑같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날짜까지 세는 그의 모습은 살짝 스토커 같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이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도 가능한 걸까요?

이쯤에서 원작 소설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포스팅인데 영화 말고 다른 얘기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네요)
원작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이하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라틴아메리카 작가로 저 유명한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1982년 '백년동안의 고독' 바로 다음작품이 1985년에 출간된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마르케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환상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란 장르이죠. 환상 혹은 마법 그리고 현실... 공존할 수 없는 두 단어가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Jose Garcia Marquez) / 작가
출생 1928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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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전 세계 어느 곳이나 격변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5.18과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남미도 민주화와 쿠데타 혁명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하죠. 그 격변의 동시대를 살던 작가 마르케스는 리얼리즘이란 단어의 뜻처럼 현실성과 역사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회참여방식은 아니었던거죠. 어린시절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환상적인 이야기들의 영향을 받은 마르케스는 자신의 소설에 판타지적인 측면을 가미해 단순한 기록과 재현에서 끝내지 않고 미학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콜레라시대의 사랑' 또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 비상식적이고 모순으로 가득찬 현실 속에서 독자로 하여금 진실은 무엇인고 진정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동화는 아닐까요? (영화에서는 워낙에 사랑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원작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아 우리 낭만주의 얘기를 쭉 하고 있었죠?

그러고 보니 낭만주의 문학에 대해 뒤져 봤더니 그 '환상적 사실주의'란 말이 나오긴 합니다. 개성을 중시하고 질서를 벗어나 풍부한 상상력을 펼쳤던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환상적 사실주의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마르케스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순 없겠지만 아무튼 낭만주의 시대에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다고 하니 앞서 살펴봤던 드라큘라 같은 작품들도 그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현실이라는 가장을 하고 사랑이라는 환상을 얘기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습니다.

p.s. 50여년 간 한 여인을 기다려 온 플로렌티노 아리사. 하지만 그가 그렇다고 금욕생활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페르미나를 기다리는 동안 육체적으로 탐닉했던 여자들이 600여명이라고 하죠? 하나하나 숫자를 매겨나가고 기록하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모습이 진정한 사랑이라기 보단 집착에 가깝다고 느껴지면서도 살짝 부러워지는 건 왜일까요? ㅎㅎ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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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멸의 연인 - 베토벤, 낭만주의의 창시자

내 불멸의 연인이여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다시 이을 때까지
오직 그대와 결합하는 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입니다.
그대는 내 인생이며 전부라오
다시 만날 때까지
영원히 사랑해 주시오
영원히...


- 영화 '불멸의 연인' 중 베토벤의 편지 축약



베토벤이 죽은 후, 받는 이를 알 수 없는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됩니다. 그가 31살 무렵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에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베토벤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죠. 영화 이야기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편지는 실제로 지금도 베토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덧붙여 1994년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불멸의 연인'입니다.


본의아니게 게리올드만이 연속으로 등장하십니다. 배트맨을 돕기 훨씬 전 이 무렵의 게리올드만은 정말 강렬함 그 자체였죠~


불멸의 연인
감독 버나드 로즈 (1994 / 영국, 미국)
출연 게리 올드만, 조한나 테어 스티지, 예로엔 크라베, 크리스토퍼 풀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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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는 일종의 추리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친구 겸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제론 크라베)가 베토벤의 유언장에 적힌 무명의 상속자를 찾기 위한 조사 과정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입니다. 쉰들러는 그 '불멸의 연인'을 찾기 위해 베토벤의 과거 여인들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사람들은 괴팍했던 베토벤의 성품, 천재적인 음악성을 증언하면서 베토벤과의 뜨거웠던 사랑을 나눴노라고 증언하죠. 하지만 불멸의 연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마지막 장면 당시 저에겐 충격적이었던 반전과 함께 그가 진정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끝나게 됩니다.

이 영화는 픽션이 분명하지만 베토벤의 편지들과 그가 남긴 음악,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살펴보면 왠지 베토벤이 실제로 평생을 걸쳐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베토벤의 경우에는 그 사랑이... '증오'로 바뀌어 평생을 간 케이스죠. 제가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말인데 사랑이란 엄청난 에너지라서 그 사랑이 증오로 바뀌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서어서 사랑이 떠났음을 받아들이고 그 후에도 계속될 나의 삶에 충실해야겠죠. 물론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베토벤 님께서도 그러지 못했죠.


쿨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우린 베토벤이 하이든, 모짜르트와 함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모짜르트보다 후대의 작곡가로서 낭만주의의 경향을 좀 더 많이 보입니다. 앞에서 낭만주의가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인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했었죠? 모짜르트의 음악이 형식에 있어서 절제와 논리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베토벤의 음악은 좀 더 감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일부러 확연히 차이가 나는 곡들을 고르긴 했지만 이런 특징이 있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기교가 뛰어난 모짜르트 음악에 비해 베토벤의 음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짠~ 한게 있습니다. 스무살 어렸을 적 한밤중에 '월광'을 들으면서 가슴벅차하던 생각이 나네요~


이러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은 영화에도 묘사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쉰들러에게 음악의 역할이 뭐냐고 묻습니다. 음악은 영혼을 맑게 한다는 쉰들러의 말에 베토벤은 음악은 작곡자의 감정과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하죠. 음악은 최면과 같다고도 하고요. 음악이란 작곡자의 감정을 나타내는 거라고 합니다. 바로 베토벤이 낭만주의에 영향을 미친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아우르는 작곡가 혹은 낭만주의의 창시자라고까지 평가되기도 합니다.

귀가 안들려 피아노의 진동을 느끼며 월광을 연주하시는 베토벤~



자, 음악얘기는 이쯤 하고 다시 영화로 돌아갈까요?


베토벤은 알려진대로 아주 괴팍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자주 묘사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를 결국 실연의 아픔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실제로 베토벤은 귀족이 아니었던 신분의 한계때문에 수차례 청혼을 하고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 열등감들이 그를 괴팍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정말 사랑의 아픔이 증오로 바뀐 나머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날을 세우며 괴팍한 성품으로 변해갔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그가 죽을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에 빠졌고 그때마다 나이나 신분 등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하니 평생 사랑에 매달리면서 살았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자신을 떠난 한 여자를 평생 증오했던, 아니 사랑했던 베토벤의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포스팅을 시작하며...


사랑은 영원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 사랑은 세상 그 누구의 사랑보다도 고결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은 흘러 사람은 떠나고 사랑은 변하고... 결코 영원한 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지금도 사랑을 떠나보내는 건 여전히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리고 늘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사랑이 내 삶의 끝까지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고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의 책장을 덮지 못하고 눈물짓는 그들의 이야기를 참 동경했었습니다. 그들에 관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아마도 그들처럼 되길 바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난 왜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했었는지, 잔인한 현실을 알아버린 지금도 왜 그렇게 이별은 힘든 건지... 그들은 왜 그랬는지...

사랑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제 기억 속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그들에 관한 영화 몇 편을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1) 드라큘라 - 열정적 사랑의 배경, 낭만주의

1920년대 '노스페라투'를 시작으로 최근의 '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 영화는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내고 진화하면서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죠. 하지만 그 원조를 찾는다면 역시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일 것입니다. 브람 스토커가 1897년 소설로 첫 선을 보인 '드라큘라'는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며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영향을 끼쳤는데 1992년 개봉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는 원전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죠.

이미지를 구하다 보니 DVD 재킷이네요~ ㅎ


드라큘라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 / 미국)
출연 위노나 라이더, 게리 올드만,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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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명한 영화라서 다들 보셨으리라 생각하고 줄거리는 짧게만 올리겠습니다.

15세기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악명을 떨치던 트란실베니아(지금의 루마니아 지역)의 블라드 왕자(게리 올드만)는 적의 계략으로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타가 자살하자 신을 저주하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 불사의 존재가 됩니다.
400여년 후, 트란실베니아에 더이상 빨아먹을 피가 없어진 드라큘라(드라쿨은 용을 뜻한답니다. 용의 아들이란 뜻이라죠~)는 런던으로 이주해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엘리자베타의 현신인 미나(위노나 라이더)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부분이 영화에서 가미된 로맨스적 요소입니다.)


미나는 처음엔 이 이방인을 거부하지만 알 수 없는 그의 마력에 빠져들고 마침내 400여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을 다짐하게 되죠. 결국 미나는 자청해서 흡혈귀의 삶을 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헬싱 교수(안소니 홉킨스)등을 비롯한 드라큘라 퇴치대가 조직되고 트란실베니아까지 쫓아가 드라큘라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엔 미나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찾게 됩니다.


드라큘라가 최후를 맞는 순간 미나의 대사가 이렇습니다.
"Our love is stronger than death."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흡혈귀 영화에서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한 마디는 바로 미나의 이 마지막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런데 그런 강렬한 사랑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여기서 잠깐 역사공부를 하고 넘어갈까요?

드라큘라가 쓰여진 19세기 유럽은 공장 매연으로 런던 하늘이 맑을 날이 없었을 정도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고, 영화에도 나오듯이 초기 무성영화가 등장하는 등 대중문화가 서서히 생겨나던 시대였습니다. 학교다닐때 배웠던 걸 떠올려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했던 고전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가 그 절정을 누리고 있을 때였죠.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성이 훨씬 가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절대왕정과 가톨릭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블라드 왕자가 교회를 등지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다짐한 것처럼 사랑을 위해서라면 한쪽이 희생하는 불평등한 관계도 이 때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죠. 무엇엔가 나를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열정이 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사실에 희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상대에게 빠져드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은 이 시절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답니다.

도색소설 보는중, 낭만주의는 대중문학도 발달시켰다

이무렵 초기 무성영화도 생겨났다



비록 1897년 출간된 소설버전의 '드라큘라'에는 드라큘라와 미나의 로맨스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고 하니 이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그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상상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19세기 무렵 열정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유명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해 보죠. 18세기 작품인데 이 소설로 인해 짝사랑에 빠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가요~ 죽음으로밖에 잊을 수 없을만큼 사랑은 강렬한 감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낭만주의와 함께 열정적 사랑이 문학의 단골 소재가 되기 시작하는데, 이 열정이란 것이 바로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 마음 상태인 것입니다. 보통 열정에 눈이 먼 사람들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죠. 내일 어떤 결과가 닥칠지 예측하지도 못하고 과거를 돌이키지도 못하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4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까지도 멈추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열정'이란 거죠.

제 생각이지만 적어도 이 당시에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식상한 조언 따위 해주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낭만주의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소설 '드라큘라'. 400년이란 긴 시간을 오직 하나의 사랑을 위해 버텨온 한 가엾은 영혼의 이야기가 흡혈귀 전설로 포장되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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