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명 : '사랑은 비를 타고' 14주년 공연
> 공연날짜 : 2009.9.25(금) 8시
> 공연장소 : 대학로 한성아트홀
> 캐스팅 : 동욱-임춘길, 동현-최성원, 미리-강연정


사비타의 추억

요즘 '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 포스팅 때문에도 그렇고 '렌트'랑 '지킬앤하이드' 내한공연 때문에도 그렇고 뮤지컬 처음 입문 하던 때를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90년대 중반 뮤지컬 붐이 처음 일기 시작하던 그 때 뮤지컬의 환상에 푹 빠져 이쪽 바닥에 발을 담그게 된 게 어느덧 10여년이 지났군요. 이제 그 시절의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은 대부분 젊은 꽃미남 배우들로 세대교체가 되어버렸고 저는 그동안 환상에 다가갈 수록 환상은 깨지고 만다는 걸 알아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공연을 보러 다니고 글을 쓰고... 뮤지컬은 아직도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은 비를 타고'를 다시 보게 되었으니 이거 옛날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군요. 1995년엔 참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에 처음 발을 딛게 해 준 '그리스'가 있었고 '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가 있었고 그리고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가 있었죠. ('지하철1호선'을 제가 이 해에 봤던가 확실하지 않네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삼성동 현대백화점 꼭대기층에는 '현대토아트홀'이란 소극장이 있었습니다. '사랑은비를타고'가 여기서 초연을 했는데요, 라이브밴드 연주에다가 피아노 두대가 한 줄로 놓여있는 지금 한성아트홀 버전과는 좀 다른 무대였더랬죠. 은 줄여서 '사비타'라고 하지만 처음엔 '사랑비'라고들 불렀습니다. 그리고 전 아직도 '사비타'란 줄임말보다는 '사랑비'란 어감이 더 좋습니다만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더군요.

언제였더라~ 정보소극장에서 단체관극 후 팬미팅을 진행중인 주군


극 중 장소이동 없이 실시간으로 아파트 거실에서만 진행되는 이 작품은 처음으로 '살롱뮤지컬'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실제 형제 사이로 그 어떤 동욱/동현 듀오보다 한층 와닿았던 남경주, 남경읍의 동시 캐스팅까지 서울뮤지컬컴퍼니의 이런 새로운 작품컨셉은 이후 '사랑에 빠질때'로 이어지며 작품성과 기획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케이스를 만들어 냅니다. '사비타'의 경우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롱런할만한 괜찮은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냈던 거죠.

'사비타'는 배해일 연출, 오은희 극본, 최귀섭 작곡 등 내로라 하는 스탭진으로도 유명했는데요 이분들이 당시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셨더랬는데 이 빠방한 트리플 라인업은 다음 해 '쇼코메디'로까지 이어집니다. 최귀섭씨는 '태권V'와 우리나라 최초뮤지컬 '살짜기옵서예'의 음악을 맡으셨던 故 최창권 선생님의 아들이자 '세월이가면'의 최호섭씨의 형이죠.

아무튼 그 '사랑은비를타고' 초연을 보고 난 후 넋이 나간 채 삼성동 거리를 노래하고 춤추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리고 공연뿐 아니라 티비에서 해 준 공연영상을 녹화해 놓고 얼마나 돌려보았던지 공연에 당장 출연을 해도 될 정도였다죠 아마~ 이후에도 문화일보 홀에서도 초연멤버로 한 두번 공연을 더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이텔 뮤지컬동호회 시삽을 하면서 봤던 김성기, 김학준씨의 버전이 생각나구요~ 인켈아트홀에서 주원성, 엄기준, 김소현, 윤공주 씨 등의 공연을 봤던 기억도 나네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번 사비타 공연이 아마 10번정도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티 사비타'가 만난 2009년의 사비타

솔직히 말하면 전 최근에도 주변에 사비타 본다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 말리곤 했었답니다. 그렇게나 좋아하고 푹 빠져 살았던 공연인데 언제부턴가 비추 목록에 올라가게 된 이유는 몇년 전 보았던 사비타에 대한 안좋은 기억때문이었습니다. 인켈아트홀(지금의 한성아트홀)에서 사비타 오픈런이 시작된 이후로 2006년인가 처음 보게 되었는데 사비타는 그동안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주원성, 서동균, 윤공주 캐스팅과 김성기, 엄기준, 김소현 캐스팅의 공연을 보았었는데. 과거 초연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스토리나 음악들은 모두 그대로였지만 조금 더 많이 가벼워졌더군요. 관객과의 과도한 스킨쉽이라던가 배우들이 무대에서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고 웃기도 하는 모습들은 초연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는 저에게 무척이나 좋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모 배우님의 실망스런 공연까지 더해 제 맘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던 '사랑비'의 추억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만나지 말라고 하는가 봅니다 ㅎ)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엄기준 : 몇살이야? 김소현 : 22이요~ 엄기준 : 무슨띠야?  김소현 : -_-;;

하지만 배우도 관객도 그런 분위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걸까요 아니면 제가 너무 고리타분했던 걸까요, 저의 무관심과는 상관없이 사비타는 여전히 롱런을 계속하며 2008년부터는 일본에서도 공연되는 등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된 2009년의 사비타는 또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2006년도보다 많이 안정되고 많이 진지해지고 업그레이드에 대한 노력이 많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임춘길


일단 임춘길씨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춘길씨 하면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라 할만한 분인데요 사실 노래나 연기보다는 탭이나 춤으로 훨씬 두각을 나타냈던 분입니다. 제 기억 속에도 이 분의 연기보다는 밥포시 스타일의 섹시한 안무나 42번가의 현란한 탭댄스가 더 각인되어 있네요. (개인적으로 예전에 크레이지포유 오디션 현장에서 연습하시는 걸 뵌적이 있는데 발이 안보이더군요 @.@) 워낙에 춤을 잘 추시는 분인지라 춤 못추는 설정의 동욱 역이란 얘길 듣고 중간에 한 건 하시겠구나 했더니 역시나 비의 브레이킹을 멋지게 보여주십니다. 무엇보다 동욱의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해 주셨습니다. 여성적이고 소심하고 깔끔한 동욱의 캐릭터의 그야말로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연기는 1세대다운 관록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상대 배우들과 주고받는 느낌들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셨을지 짐작이 되더군요.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최성원


최성원씨 역시 이름값을 톡톡히 해 주십니다. 최성원씨 역시 사비타가 처음이 아닌지라 무척이나 여유있는 동현을 선보입니다. 자칫 다혈질에 거칠게만 표현하게 되는 동현을 오히려 여유있게 표현해 세상 모든 풍파 다 겪어낸 초연함 같은 것이 보이더군요. 유미리와 농담을 주고받는 문제의 그 말장난씬도 아주 가볍지 않게 적당한 웃음으로 넘어가 줍니다. 무엇보다 현재 '영웅을 기다리며'에 출연하시면서 사비타 공연을 하신다고 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사비타야 워낙에 레파토리화 된 공연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대사나 노래에 익숙해서 금방 무대에 적응하긴 하겠지만 공연 두개를 같이 하면서 그정도 집중력을 보인다니 놀랐습니다.

ⓒ 엠뮤지컬컴퍼니. All Rights Reserved. 강연정


유미리 역에는 신인배우 강연정씨였는데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출연경력을 가지고 있는만큼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비록 유미리 역할의 배우가 가져야 하는 필수조건인 섹시함이 살짝 부족하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그 2%의 아쉬움들을 다 덮어주는 게 바로 강연정씨의 성실함이었습니다. 참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배우였습니다. 캐릭터면 캐릭터, 노래면 노래 연습을 얼마나 했을지가 보이더군요.

그리고 작품 자체도 상당부분 업그레이드가 되었더군요. 전체적인 무대는 그대로이지만 아파트 안쪽을 표현한 실루엣 유리문이 신선했고, 무엇보다 노래가사가 많이 바뀌었더군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제가 초연공연 때 닳고닳도록 들었던 그 가사들이었던 것 같은데 가사가 입에 맞게 또 요즘 상황에 맞게 많이 바뀐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소라찜'이 '추어탕'으로 바뀐 거겠네요. 하긴 옛날에 공연 볼때도 '소라찜'이란 요리를 집에서 잘 해먹나 의아해 하곤 했었는데 추어탕이라니 훨씬 일상생활에 가까운 그럴법한 소재로 바뀐거죠.

한동안 사비타에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건 바로 이렇게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스탭들의 노력과 선후배 배우들의 성실함, 집중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작품의 흐름에서 벗어난 소소한 이벤트 같은 걸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순 있어도 결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런 배우들의 노력과 진실성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노래방 반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비타의 MR은 여전히 아쉬웠습니다. 사비타 정도의 공연이면 MR에 좀 더 투자를 하면 어떨까도 싶은데 라이브밴드의 '사비타'를 기억하고 있는 저로선 한 없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히 동욱, 동현 형제의 연탄곡을 MR로 듣는 느낌은 좀 안타깝더군요. 언젠가 좀 더 큰 무대에서 라이브밴드의 공연을 볼 수는 없는걸까요? 혹시 3000회정도면 가능하려나요?


언제나 그 자리에 '사비타'

'사랑은 비를 타고'가 14년을 달려오는 동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죽인다웨딩회사'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웨딩닷컴'으로 상호가 변경되었고
동욱이 소파위에서 마지못해서 추던 춤은 '룰라의 싸바싸바 엉덩이 춤'에서 '브아걸의 시건방 춤'으로 진화했고
이벤트 비용 '20만원'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40만원'으로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요리시간에는 '소라찜' 대신 '추어탕'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많은 것들이 바뀌어 왔지만 여전한 것들도 있네요.
잔소리 하는 형과 아웅다웅 하는 동생과
매사에 덜렁대고 실수투성이인 사회초년생의 모습
음식이 타 버려 호들갑을 떠는 형제의 모습도
그리고 두 형제가 연주하는 midnight blue in rainy day의 멜로디도 그대로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사비타는 그렇게 다른 듯 친숙하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더 많은 배우들이 피아노 연습을 해 사비타를 거쳐갈테고 많은 관객들이 사비타에서 또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갈테죠. 또 많은 것들이 바뀔 테지만 사람들이 사비타를 보고 가져가는 느낌은 그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추억같은 사비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fin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나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해당 제작사와 개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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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lovemusical.net/ 풀잎피리 2009.10.06 22:37 신고

    잘 읽고 갑니다. 작년에 7번째로 보고 끊고 있는 작품이에요. 최성원 씨 참 아끼는 배우라 열심히 봤더랬죠. 그냥 그의 정겨운 동욱을 좋아합니다. 근데, 뭔가 작품이 그냥 지금과 참 엇나가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이 정도면 되었어! 라고 그만 보게 되었어요. ^^ 10년 전에 보셨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미투에서 소환해주신 바람에, 재미난 글도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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