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를 아시나요? 제주도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섬입니다. 가파도의 땅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마라도를 두차례 다녀오면서 배가 정착할 때 가까이서 본 적은 있더랬죠. 아마도 가파도를 들어본 적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파도가 외딴섬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섬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더랬죠. 퍼포먼스 '바람속의고임'은 이 가파도에 서려있는 남모를 이야기를 들춰냅니다.

무대위에는 놋그릇들이 놓여 있습니다. 무대 중앙엔 붉은 옷이 걸려있고 공작깃털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놋그릇들은 곧 악기가 되고 무대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에는 가파도의 바람과 갈대의 물결이 펼쳐지고 커다란 바위도 보입니다. 해골형상을 머리에 쓴 퍼포머는 그 영상 속의 갈대와 바위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피와 살의 돌, 무거운 돌, 흔들리는 돌, 외로운 돌...
  저 바람은 언제 그치는 것입니까?...
  그치기는 하는 것입니까?...

영상속에 비치는 건 가파도의 갈대밭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커다란 바위들이 놓여있는 건 고인돌입니다. 가파도에는 2000년 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130여기의 고인돌들이 있다고 하네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옮겨지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에 담겨져 있을 사연들... 퍼포머는 그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숨소리와 그 밑에 깔려있을 땀과 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퍼포머는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공작깃털을 손과 머리에 장식하고 가파도의 세찬 바다바람을 맞으며 고인돌의 숨결을 느끼고 교감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의 돌무더기가 되어버린 그 안에 아직도 서려있을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영원할 거란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드에게 퍼포머는 그렇게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프린지페스티벌 블로그 '프린지데일리'에 동시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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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쉬몹이란?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란 피아노 곡이 있습니다. 피아노 곡이라곤 하지만 4분 33초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관객의 반응과 주변의 소음 등 그 시간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연주의 일부분이 되는 그런 곡이죠. 이런 걸 이른바 '해프닝'이라고 한답니다. 현장에 참여한 관중의 예기치 않은 행동을 수용하는 존 케이지의 해프닝 이후 이런 우연성의 수용과 관객의 참여는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기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죠.

전 플래쉬몹을 볼 때마다 현대예술의 '해프닝'이 떠오르는데요, 플래쉬몹이 뭐냐구요? 플래쉬몹 혹은 게릴라성 퍼포먼스라고도 이름 붙일 수가 있겠는데 이메일이나 휴대폰 연락을 통해 약속장소에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불특정 다수의 군중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 가구점에 침입해 단체로 잠들어 버린다거나 인파가 많은 곳에 모여 갑자기 박수를 치고 사라진다거나 하는 것 들이죠~

예를 들어 이런겁니다.
플래쉬몹의 한 장르로까지 굳어진 이른바 'mass freeze'라고 하는 플래쉬몹입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세계 각 도시에서 있었던 mass freeze가 많이 있더군요.



뉴욕에서 있었던 mass freeze인데요, 이러곤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ㅎㅎㅎ 사람들이 뒤늦게 알아채고 박수를 쳐 주는군요~


- 예술성을 띠게 된 플래쉬몹(플래쉬몹 뮤지컬의 케이스)

이렇게 단순히 군중들이 모여 그야말로 무의미한 행동들을 하고 사라져버리는 플래쉬몹이 어떤 의미와 예술성까지 띠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많이들 보셨을 'pranstgrup'입니다. 이 프랭스트그룹은 콜롬비아 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게릴라퍼포먼스 모임인데요, 순수한 의미에서의 플래쉬몹과는 다르지만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그들의 노력이 참 이뻐보입니다. 나름 유명한 강의실 뮤지컬 'Reach'를 보시겠습니다.



강의실에서 난데없이 한 학생이 일어나 권위적이고 답답한 교육현장을 고발합니다. 처음엔 황당해하던 교수님도 끝내 박수까지 쳐주네요~ 그 여유가 참 부럽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가능했을까요?


프랭스트그룹의 또다른 작품 '라이브러리 뮤지컬 -
Reading on a Dream PRANK!!' 입니다. 이들은 음악도 직접 작곡한다는데 꽤 음악성도 느껴집니다.




비슷한 작품으로 'improve everywhere'의 작품이 있습니다.
improve everywhere는 각양각색의 플래쉬몹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그룹인데요. 이 작품은 뮤지컬 적 요소를 많이 띠고 있네요~ 이른바 '푸드코트뮤지컬'입니다.




이번 플래쉬몹 뮤지컬은 런던의 한 공항에서 펼쳐졌습니다. 공항에서 일하는 청소부, 경찰 등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거... 같습니다. (영어가 딸려서 ㅎ) 음악을 들어보니 귀에 익은 기존 뮤지컬 곡도 있네요. 7대의 히든카메라와 14명의 배우가 출연했습니다. (좀 이따 얘기하겠지만 사실 이거 마케팅 광고입니다.)



티켓 예약업체의 게릴라 마케팅이라고 하네요~


- 플래쉬몹의 진화(앤트워프 역 퍼포먼스의 케이스)


자, 이제 진정한 군중mob들이 등장하는 플래쉬몹의 진화를 보시겠습니다. 사전 준비없이 그저 이메일이나 핸드폰으로 연락된 사람들이 약속장소에 모이는 플래쉬몹은 모이는 사람이 적을 경우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플래쉬몹도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즉흥성이 생명이던 플래쉬몹은 이제 잘 짜여진 안무로 발전합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던 동영상인데요, 벨기에 앤트워프 역에 갑자기 '사운드오브뮤직'의 '도레미송'이 울려퍼집니다. 시민들은 의아해 하는데요, 그런 시민들이 하나둘씩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춤추는 승객들은 점점 늘어 200여명의 군무로 발전하죠. 상황을 깨닫고 지켜보던 일반 승객들이 동참하기도 합니다.

'멋있다~' '해보고 싶다~' '팍팍한 삶에 온기가 느껴진다~' 등등 이 동영상에 대한 반응들은 뜨거웠는데요, 대체로 일상생활에서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들에 대한 대리만족과 해방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퍼포먼스에 맞춰 편곡되었을 음악도 그렇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는 댄서들의 안무도 그렇고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했겠구나 싶은 플래쉬몹이었습니다.


- 상업성을 띠게 되는 플래쉬몹(T-mobile의 케이스)

비슷한 작품이 하나 더 있는데요, 영국 리버풀 역에서 있었던 집단 댄스 퍼포먼스를 보시죠~



앤트워프 역의 '도레미송'보다 규모도 커지고 음악도 다양해지고 춤도 훨씬 프로페셔널해졌습니다. 트위스트에서 모던댄스, 왈츠까지 아우르는군요. 지켜보던 일반 시민들은 박수를 쳐주지만 막상 춤을 추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화도 걸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합니다.

무척이나 신나는 퍼포먼스임에는 틀림이 없는데요, 이거 T-mobile이란 회사의 광고성 이벤트였다고 하네요. 이른바 'life's for sharing'이란 슬로건으로 벌인 아주 잘 짜여진 퍼포먼스였는데, 찾아보니 이런 광고성 이벤트를 여기저기서 많이 했더군요. 우리나라 모 핸드폰 광고에서 '맷돌댄스'가 히트했던 것처럼 영국에도 이 'T-mobile 댄스'가 꽤나 유명합디다~


아래 동영상은 바로 위 리버풀 역 퍼포먼스의 메이킹 필름인데요, 8주간의 준비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400명의 댄서를 선발하기 위해 무려 10000명의 오디션을 봤다고 하네요. 그리고 물론 예상은 했지만 현장 사전 리허설 까지 철저하게 진행 된 걸 보니 '즉흥'이 최고의 미덕일 플래쉬몹 퍼포먼스에 살짝 배신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즉흥처럼 보이긴 하지만 더이상 즉흥이 아닌, 게릴라처럼 보이지만 더이상 게릴라가 아닌 순간입니다. 하지만 T-mobile의 상업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T-mobile 댄스는 재미있고 유쾌한 이벤트임엔 틀림없습니다. 플래쉬몹은 군중이 '모여' 뭔가를 '한다'는 성격상 특정기업이나 단체의 이미지를 나타내거나 목소리를 내는데 좋은 도구임에 틀림이 없는데요, 관객들이 보고 감흥을 느낄 수만 있다면 작품이 하나의 art로 여겨질 수만 있다면 플래쉬몹의 상업성도 어느정도 봐 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최근 게임개발사 EA가 펼친 자작극 노이즈 마케팅과는 확실히 구분되어야겠죠. EA... 좀 심했습니다.


- 궁극의 플래쉬몹(BBC 플래쉬몹 오페라의 예)

우리가 늘상 지나치는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 어느정도의 예술성까지 갖추고 있어 그저 감상하기에도 손색이 없고 더 나아가 자신이 동참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퍼포먼스... 아마 이게 플래쉬몹의 궁극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BBC에서 제작한 '플래쉬몹 오페라'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패딩턴역에서 시도된 생방송 오페라인 '플래쉬몹 오페라'는 기차역에 오케스트라까지 배치하고 비제, 푸치니 등 귀에 익은 오페라 곡들을 개사해서 현대의 젊은 연인을 주인공으로 한 짜깁기 플래쉬몹 오페라를 선보입니다. 1시간동안 BBC에서 생방송으로 방송되기도 한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와 시민들로 구성된 합창단과 수준급 오페라가수들을 동원해 사전에 제작된 영상과 함께 한편의 드라마를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떠나려는 여자친구 샐리의 사랑을 되찾으러 패딩턴 역을 찾는 마이클은 우여곡절 끝에 샐리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마침내 관객들의 노래소리가 둘의 사랑을 완성시킵니다. 마지막 장면 '공주는잠못이루고'를 보실까요?



(이 작품은 도대체 영상을 구할 수가 없어서 화질은 그지같지만 우리나라에서 방송했던 더빙영상으로 대체합니다. 플래쉬몹 오페라 마지막 장면인데요 다른 파트도 업로드가 되는대로 따로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우리말해설에 Joogoon입니다 ^^)

정말 이런 방송을 기획하고 실제로 제작 할 수 있는 그들의 인프라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ㅜㅜ


- 우리나라의 진정한 게릴라 퍼포먼스를 꿈꾼다

우리나라에도 플래쉬몹 이벤트가 종종 펼쳐지고 있습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란 제목으로 펼쳐진 젊은이들의 나라사랑 캠페인이라는데 mass freeze와 댄스를 곁들였군요. 위의 티모바일 댄스 같은거랑 비교하면 참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노력이 가상합니다 그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거리에서 펼쳐지는 게릴라성 퍼포먼스는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큰롤 스윙 댄스 동호회 '딴따라 땐스홀'은 정기적으로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죠.



하지만, '딴따라 땐스홀'의 거리공연은 의상 등 사전 준비가 되어 있고 정해진 무대란 공간이 존재하는 즉 관객과 퍼포머가 구분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플래쉬몹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공지가 안된다는 점에서 게릴라성 퍼포먼스라고는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얼마전에 있었던 '지하철 결혼식'도 생각납니다. 가난한 커플이 지하철에서 결혼식을 올려 보는 승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는 딱 들어도 가짜일 거 같은 퍼포먼스에 많은 분들이 낚이셨었는데요. 젊은 연극인들의 신선한 시도는 참 좋았습니다. (저도 연극동아리 시절 지하철에서 노래부르고, 대로변에서 노래부르고 이런 거 해봤거든요 ㅜㅜ) 하지만 이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제란 착각이 들게 하는 퍼포먼스는 순수한 의미의 거리 퍼포먼스에서 벗어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와 다를 바가 없는거니까요.

앞서서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처럼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의미에서 최근 유행하는 플래쉬몹 혹은 게릴라성 퍼포먼스는 앞으로 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일상의 어떤 행동이 퍼포먼스가 되고 내가 걸어가는 이 길거리가 무대가 되고 그 유쾌한 퍼포먼스에 내가 함께하기까지 한다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우리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질 진정한 플래쉬몹 퍼포먼스를 기대해 보면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p.s. 그로부터 8개월후... 광화문 스윙댄스 플래쉬몹 보기 http://joogoon.net/191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와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해당 제작사와 개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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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oogoon.net 주군 2009.07.08 00:36 신고

    이상하게 문장이 잘려있거나 하네요~ 티스토리 점검 후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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