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숭례문 화재 사건과 미디어법 통과 등 근래 우리 주변에 일어났던 일들을 TV모니터로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제목과 그에 대한 설명을 프로그램으로 들었던 터라 책상 하나가 놓여있는 연극의 배경이 취조실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갑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요?

두 명의 용의자 '이작가'와 '박형'은 철거민 관련 불법집회 후 숭례문을 방화한 혐의로 취조실에 앉아 있습니다. 두 용의자는 각각 수사관 '김부장'과 '조동중'에게 취조를 받게 됩니다. 물론 각각 다른 취조실에서 따로 따로 취조를 받게 되죠. 2인극 형식을 띄는 이 작품은 2명의 배우가 이렇게 서로 수사관과 용의자가 되어 장면이 바뀔 때마다 1인 2역을 선보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에게 연극적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장소와 무대장치(의상,소품 등)의 한계로 인해 몇몇 장면에서는 어떤 취조실의 어떤 인물인지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민감한 사안의 법률이(근래 통과된 미디어법을 강하게 암시하는) 다음날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숭례문 화재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수사는 두 수사관의 사적인 승부욕까지 개입되어 결국 한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범인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변질됩니다. 수사관들은 용의자를 회유하고 설득하고 협박하면서 자백을 유도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죄수의 딜레마'이론에 나오는 상황설정이 등장합니다. 윌리엄 파운드 스톤의 책 '죄수의 딜레마'에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오죠.

범죄를 같이 저지른 당신과 동료가 붙잡혔다. 둘은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독방에 각각 갇혔다. 경찰은 당신들의 죄를 입증하지 못해 경미한 혐의만으로 1년 형에 처할 수 밖에 없다. 그때 경찰이 당신과 동료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만약 당신이 동료의 죄를 증언하고 동료가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석방되고 동료는 3년 형을 받을 것이다. 당신과 동료가 모두 서로의 죄를 증언하면 둘 다 2년 형을 받고,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1년 형에 그친다.” 당신과 동료는 자신의 결정을 내릴 때까지 서로의 결정을 알지 못하며 동료가 똑같은 제안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만을 듣는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연극 속의 용의자들에게도 같은 상황이 적용됩니다. 한 쪽이 상대방의 숭례문 방화 사실을 자백하면 바로 풀려나게 되고 상대방은 몇년동안의 형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둘 다 끝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둘 다 6개월 형에 그치게 되죠. 여기서 가장 좋은 선택은 둘 다 증언을 하지 않고 6개월 형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상대방과 접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은 그 믿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국 제한된 7시가 되기 직전 자신이 배신당할 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두 용의자는 거의 동시에 자백을 하게 되지만 곧 진범이 잡히게 되고 난처한 수사관들은 두 용의자의 금강산 관광 경험을 구실로 간첩 혐의를 만들어 내면서 극이 끝나게 됩니다. 엔딩의 간첩 혐의 장면은 무척이나 코믹하게 그려져 있는데요, 지금까지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달려온 시간들이 결국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보다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넌센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이 작품은 '죄수의 딜레마'란 상황설정을 통해서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지 심리적인 탐구를 하면서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건 뭘까 하고 말이죠. 이 사회를 움직이는 건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비논리적인 음모론일까요? 극의 첫 장면 수사관의 조수는 관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바깥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라구요.

연 극 속에서처럼 범인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 우리 현실에도 존재하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일개 시민들이 알지 못해야 평화가 유지되는 그런 일들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연극 '죄수의 딜레마'는 미디어법 통과 현장의 국회 모습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립니다.

p.s. 극단 '파랑곰'은 연세대 사과대극회와 총연극회 출신들로 구성된 극단이라고 합니다. 학내 극회 출신답게 사회문제를 다루는 데 익숙한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창작의 노력도 높이 사줄만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극의 완성도를 만들어 내는 데 미숙한 모습도 살짝 보이는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 아마추어 극단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재미를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작위적인 코미디를 집어넣는 것인데요. 소변이 들어 있는 병을 들어 마신다거나 극의 흐름과 관계 없이 관객에게 극의 참여를 요구한다던가 하는, 극 전체를 흐르는 일정의 선을 넘어선 설정들은 어쩌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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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벗을수 있을까?' 라고 물어보는 이 작품은 제목처럼 끊임없이 벗기고 씌우기를 반복합니다.
모자를 써서 자신을 가리려는 이와 끊임없이 벗기려는 이가 무대 위에 있습니다.
가리려는 이는 계속해서 뭔가를 덮어쓰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하고 안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덮어쓰고 피하려하고 도망치려 하고 숨으려 합니다.
벗기려는 이는 숨지 못하게 계속 방해를 합니다.
숨으면 찾아내고 도망치면 막아서고 가리려고 하면 벗겨내고야 맙니다.

어찌보면 숨바꼭질과도 비슷한 그 모습이 마치 우리네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내 모습을 감추려 하고 감춰야만 마음이 놓이고
세상에 나를 마음껏 드러내기가 두려운 건 왜일까요?

세상은 반면 그런 나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나란 존재를 발가벗겨 나를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게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가로막고 나를 돌려세우는 건 누구일까요?
세상일까요?
다른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나 자신인 걸까요?

원래 사회학을 전공하고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무용수 박소현씨는 아기자기한 동작들을 모티브로 귀여운 안무를 선보입니다.
무 용의 다이나믹한 동작들 보다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움직임과 상황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큐트함이 살짝 식상해질 무렵 적절한 음악과 함께 탄력있는 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극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무용 비전공자답게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독창적인 느낌으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이 무용수는 아마도 끊임없이 take off 하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도 보고 싶어지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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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를 아시나요? 제주도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섬입니다. 가파도의 땅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마라도를 두차례 다녀오면서 배가 정착할 때 가까이서 본 적은 있더랬죠. 아마도 가파도를 들어본 적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파도가 외딴섬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섬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더랬죠. 퍼포먼스 '바람속의고임'은 이 가파도에 서려있는 남모를 이야기를 들춰냅니다.

무대위에는 놋그릇들이 놓여 있습니다. 무대 중앙엔 붉은 옷이 걸려있고 공작깃털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놋그릇들은 곧 악기가 되고 무대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에는 가파도의 바람과 갈대의 물결이 펼쳐지고 커다란 바위도 보입니다. 해골형상을 머리에 쓴 퍼포머는 그 영상 속의 갈대와 바위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피와 살의 돌, 무거운 돌, 흔들리는 돌, 외로운 돌...
  저 바람은 언제 그치는 것입니까?...
  그치기는 하는 것입니까?...

영상속에 비치는 건 가파도의 갈대밭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커다란 바위들이 놓여있는 건 고인돌입니다. 가파도에는 2000년 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130여기의 고인돌들이 있다고 하네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옮겨지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에 담겨져 있을 사연들... 퍼포머는 그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숨소리와 그 밑에 깔려있을 땀과 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퍼포머는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공작깃털을 손과 머리에 장식하고 가파도의 세찬 바다바람을 맞으며 고인돌의 숨결을 느끼고 교감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의 돌무더기가 되어버린 그 안에 아직도 서려있을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영원할 거란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드에게 퍼포머는 그렇게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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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밤 홍대앞 놀이터...

기타와 드럼만으로 구성된 미니멀밴드의 즉흥적인 연주에 맞춰 댄서들의 즉흥적인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을 넘나드는 그들의 몸짓은 완급을 적당히 조절하는 밴드의 리듬에 맞춰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전개됩니다.

짜여진 안무가 아닌 그들의 몸짓에선 '놀이'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비를 피하기 위한 우비는 그대로 의상이 되고, 비를 피하는 몸짓들은 그대로 안무가 됩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반응하며 장난치듯 시작된 상황이 그 감정대로 동작으로 이어지고 동작은 곧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기발할 것도 심오할 것도 없는 즉흥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댄서들의 교감과 몸짓들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관객의 호응까지 이끌어 냅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모호한 거리공연...
모든 것이 즉흥인 공간... 모든 것이 놀이인 공간...
놀이를 하는 그들도 놀이를 지켜보는 나도 즐겁습니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나도 충분히 그들과 함께 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발짝만 내딛는다면...

프린지는 우리가 그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놀이터 같은 이 곳에서 다 같이 한 걸음만 내딛어 보자구요. 우리는 스스로 빛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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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 블로그, 이름하여 '프린지데일리'가 작년에 비해 좀 더 깔끔하고 좀 더 발칙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디자인도 새로 하고 카테고리 이름도 바꿨습니다. 보기 편하라고 레이아웃도 새롭게 구성했고 여름을 뜨겁게 불태울 최정예 멤버들도 구축해 놓았습니다. 끊김 없이 잘 써지는 펜과 메모지도 준비했고, 사진 잘 찍으려고 친구의 렌즈도 빌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뭔가 부족합니다. 2%까지는 아니고 한 1%정도가 부족합니다. 부족한 1%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프린지데일리의 마지막 퍼즐 하나를 채워주세요. 프린지의 아티스트는 우리 모두입니다.


자, 다함께 놀아봅시다~


posted by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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