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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군님의 2009년 12월 16일에서 2009년 12월 18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안애순 무용단 2009년 신작 '불쌍'

안애순 무용단의 '불쌍'에 관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니 '불교와 힙합의 만남'이라고 소개한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매체를 보아하니 역시나 불교관련 인터넷 언론이었습니다. 작품을 보는 눈은 다양하겠지만 불상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참 어지간히 연관짓고 싶었나보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본 '불쌍'은 불교에 관한 그 어떤 메세지도 담고 있지 않았고 힙합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도 아니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안애순 무용단의 2009년도 신작 '불쌍'은 불상佛像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불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신성하고 종교적인 불상이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까요?

공연을 보는 내내 저는 앤디워홀이 떠올랐습니다. 공연 시작 무렵 무대위에 죽 늘어서 있던 다양한 불상의 모습들과 공연내내 무대위에 비춰졌던 영상 속 아이콘들이 마치 앤디워홀의 팝아트를 보는 듯 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대량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모든 사물들의 본질은 사라져 이미지만 남아버린 모습을 제대로 포착했던 앤디워홀의 작품들처럼 '불쌍'은 그 본래의 의미와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한낱 인테리어로 전락해버린 불쌍한 '불상'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앤디워홀의 '마릴린먼로' - 마릴린먼로란 배우는 사라지고 그 이미지만 나열되어 있다

'불쌍'의 모티브가 바로 파리의 부다바(Buddha bar)라고 합니다. 안애순 선생님은 동양의 신성한 불상이 유럽의 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로 쓰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서 아마도 기호화로 대변되는 현대문화의 한 단면을 보신 것 같습니다. 저 먼 유럽땅의 부다바를 얘기할 것 없이 우린 이미 이미지와 기호로 가득찬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기능이나 쓸모에 관계없이 티비에 넘쳐나는 광고들 속의 이미지로 상품을 선택하며 이모티콘이 없으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자메세지로 대부분의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시뮬라시옹 이론을 말한 보들리야르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한다'구요~ 다양한 모습을 한 불상들과 가면을 쓴 무용수들은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혹은 숨긴 채 무대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무용수들은 가면을 벗고 불상들도 무대 밖으로 사라집니다. 이제 무대는 놀이터가 됩니다. 무용에서의 놀이성을 강조한 안애순 무용단의 작품답게 어느 순간 무대에는 무용수들의 즉흥적인 몸동작들이 어우러지면서 한바탕 난장이 펼쳐집니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의 존재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본질을 되찾으려는 부처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움직임은 무용수들의 동작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자, 소쿠리, 풍선 등 다양한 소품들이 오브제로 등장해 또 다른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냅니다. 역시나 앉아서 쉬는 혹은 무엇을 담는다는 본질은 사라진 채 그저 의미없는 기호로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앞서 불상의 모습과는 달리 본질을 잃어버린 그 모습이 그렇게 슬퍼보이진 않습니다. 아마도 '놀이'라는 원초적인 행위가 사물들을 살아숨쉬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거대한 불상 앞에서 식사를 하는 부다바 Buddha bar

이렇게 무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더불어 다양한 오브제의 등장, 일렉트로닉한 음악과 팝아트적인 영상과 함께 컨템포러리 댄스를 넘어선 하나의 토탈 팝아트의 면모를 나타냅니다. 스크린에는 스타벅스, 세븐일레븐 등 너무나 익숙한 로고들이 하나의 기호와 이미지로 번쩍거리고 있고, 생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7,80년대 느낌이 나는 일렉트로닉한 음악이 무대 위를 채웁니다. 옛 LP에서 음원을 뽑아낸다는 DJ소울스케이프의 음악은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보여주는 이 작품의 컨셉을 아주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음악과 이미지와 움직임과 오브제 등 안애순 무용단의 '불쌍'은 이제는 식상해진 '퓨전'과 '크로스오버'를 넘어 '하이브리드(혼성)'와 '콜래보레이션(협업)'이라는 트렌드를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놀이는 끝나고 무용수들은 다시 가면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춥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전통춤과 팝핀까지 동원된 무용수들의 다양한 몸짓들도 이제 다시 하나의 기호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순간 무대는 그 감춰두었던 벽을 열어젖히며 불상들과 소품들, DJ의 모습까지 거대한 이미지와 기호들의 나열임을 보여줍니다. 기호와 이미지로 상징되는 팝아트와 무용의 만남은 얼핏 자연스럽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한편으론 처절해 보이기도 합니다. 무용수들의 몸이 만들어내는 유연함과 탄력은 어쩌면 삭막한 이미지 시대에 살아있음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이 본질과 의미를 잃어버린 기호들에 지배된 우리의 현실에 저항하는 원초적인 몸짓처럼 보여서 그렇습니다.

힘들어 보인다 St.ㅎㅎ

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무용을 특히 컨템포러리를 재미있게 볼 기회는 많지 않은데 이미지와 기호라는 현대예술의 거창한 화두들을 '놀이'로 가볍게 풀어낸 것 같아 저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재미있었습니다. 무언가 상황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질수록 유머감각이 필요할텐데 안애순 무용단의 '불쌍'은 불쌍한 우리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거 같아 좋았습니다. 안애순 무용단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아울러 힘든 여건 속에서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며 멋진 무대를 보여 준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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